"성범죄 묵인 검은 카르텔, 4월 7일에 끝장내야"

송화선 기자 2021. 2.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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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 권력형 성폭력은 민주주의 법치주의 근간 흔든다
● 서울시 성폭력 사건에서 ‘부천서 성고문’ 떠오르는 이유
● 민주화운동 앞장섰던 정치인들, 당헌 개정하며 스스로 민주주의 부정
● 민주당,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결정 철회해야
● 서울시장 선거, 시민연합후보가 당선돼야

[홍중식 기자]
"우리나라 제1도시 서울과 제2도시 부산 시장 자리가 비어 있다. 단체장 성폭력 때문이다. 서울·부산시장을 새로 뽑고자 치러지는 4월 7일 보궐선거는 한국 역사상 최악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의미도 크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피해를 적극적으로 호소한 덕에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선거를 지난 잘못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신지예(31)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한 말이다. 신 대표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청년 정치인이다. 당시 그의 당당한 눈빛을 강조한 선거 포스터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이 큰 화제였다. 신 대표는 "그 인상이 꽤 강렬했는지, 아직도 저를 만나면 '생각보다 착해 보인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며 싱긋 웃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미투 선거

‘착하다'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쓰인다. 분명한 사실은 신 대표가 강퍅하고 거침없기보다는 생각이 많고 신중한 쪽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폭력 문제에 둔감한 정치권을 매섭게 비판했다. 하지만 거친 언사는 쓰지 않았다. 신 대표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사용한 가장 강한 표현이 "비겁하다"였다. 그는 이 단어를 입 밖으로 내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고인에게 이런 표현을 쓰게 돼 그렇지만"이라는 전제도 달았다. 

"고인에게 이런 표현을 쓰게 돼 그렇지만, 그래도, 사망을 선택한 건 비겁했습니다." 

신 대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랬다. 그는 인터뷰 도중 박 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물론 성폭력 사건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언급할 때 경어를 썼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사과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식이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옮기며 이를 모두 평어로 바꿨음을 먼저 밝혀둔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정치권 성폭력을 심판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성폭력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을까.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보궐선거는 서울과 부산에서 자치단체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자기 피해를 드러냄으로써 치러지게 됐다. 그런 점에서 '미투 선거'다. 

권력자의 성폭력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 시장 성폭력과 죽음 이후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서울시가 어떤 모습을 보였나. 민주당은 '사망자에 대해 성폭력 의혹을 제기하는 건 사자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박 시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전·현직 서울시 인사들은 피해자 신상정보를 유출하거나, 피해자 진술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내용을 외부에 흘리며 2차 가해에 앞장섰다. 명백한 민주주의 퇴행이다. 동시에 법치주의도 흔들리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한 명 구제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과연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성폭력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이번 선거를 '미투 선거'로 규정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미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박 시장 성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이제 30대 초반인 딸이 직장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버티다 간신히 용기 내 피해를 구제받겠다고 나섰는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 가해자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후 사건을 왜곡하려는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며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이런 딸을 보는 아버지 마음이 어떨까. 피해자 어머니 심정은 또 어떻겠나. 미투는 이런 이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다. 성별 세대별 편가르기가 아니다. 나는 미투 사건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부산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범죄

지난해 12월 30일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수사 내용 비공개 결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제공]
여기서 잠깐 이번 보궐선거를 야기한 두 건의 성폭력 사건을 되짚어보자. 먼저 부산이다. 지난해 4월 23일 민주당 소속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이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시장직 사퇴'를 발표했다. "4월 초 여성 보좌진과 면담 중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오 시장이 업무시간에 부하 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강제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과 오 시장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강제추행 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서울시 성폭력 사건은 석 달 후인 지난해 7월 세상에 알려졌다. 7월 9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채 종적을 감췄다. 몇몇 언론이 이 소식을 전하며 박 시장 피소 사실을 보도했다. 서울시 공무원이 박 시장을 성폭력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시장이 7월 10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되면서 해당 사건 경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최근에야 검찰과 사법부를 통해 사건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 임종필)는 박 시장이 실종 하루 전날, 참모인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고소가 예상된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듣고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 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 사실을 공개했다. 

1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조성필) 재판에서는 박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진술에는) 박원순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 반 이후부터 박 전 시장이 야한 문자, 속옷 차림 사진을 보냈고, '냄새 맡고 싶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등의 문자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런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신 대표는 이 판결에 대해 "박 시장이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저질렀음을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그동안 여당 및 서울시 인사 상당수가 피해 발생을 부정했다.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피해자 공격에 앞장섰다. 이번 판결로 그런 행동이 2차 가해였음이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판결에 앞서 검찰이 박 시장 관련 수사 내용 일부를 공개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고도 강조했다. 

-그건 어떤 이유에선가. 

"검찰은 박 시장이 사망 전날 젠더특보에게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 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 사실을 밝혔다. 이를 통해 드러난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박 시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둘째, 문제 되는 행동이 뭔지 알았다. 셋째, 그것이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것만으로도 피해자가 아무 피해도 당하지 않았으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거짓 신고를 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된다. 

지난해 말, 경찰은 약 5개월에 걸쳐 진행한 박 시장 성폭력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고 어떤 일이 벌어졌나. 박 시장 비서실장 출신의 한 인사는 자기 SNS에 '고소인(피해자) 측 주장이 거짓이거나, 억지 고소·고발 사건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고소인 측의 '4년 성폭력' 주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이번에 검찰과 법원이 관련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사건 실체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려져 다행이다." 

신 대표는 "이것이 피해자의 회복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도 14일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부가 일정 부분 판단을 해주셔서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전두환 정권과 뭐가 다른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회원들은 지난해 10월 15일 서울시청 후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제공]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통이 더 클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번 사건 진행 과정을 보며 1986년 발생한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가해자는 민주화운동 관련 정보를 캐내려고 대학생을 성고문했다. 피해자가 변호사에게 사실을 알리고 법적 싸움을 시작하자 검찰은 '혁명을 위해 성마저 도구화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한 신문은 '피해자의 성모욕 주장은 혁명과 폭력을 속성으로 하는 급진세력의 투쟁 전략 전술'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전두환 정권은 피해자 주장을 정권을 음해하려는 정치모략으로 폄하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현 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는 당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운 '운동권' 출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 성폭력 피해 신고가 민주당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될까 봐 집단적으로 가해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음모론도 제기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고 있다면, 성폭력 사건을 정쟁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국민의힘 출신 김병욱 국회의원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신 대표를 비롯한 여성계 인사들이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페미니스트들은 민주당 성폭력 사건만 비판하고 국민의힘에는 침묵한다. 성폭력을 이용해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 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게 질문해 오는 사람도 제법 된다. 나는 두 사건이 서로 다르다고 본다. 박 시장 사건 피해자는 사법 구제를 원했다.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진상규명 절차를 밟으려 했다. 그런데 도움을 청했던 여성단체 관계자가 고소 사실을 박 시장 측에 흘리면서 영영 기회를 잃고 말았다. 권력집단에 형성된 검은 카르텔은 피해자에게서 고통 회복 기회를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집단적 2차 가해까지 저질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시민이 권력의 폭력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 의원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피해자가 스스로 입을 열어 세상에 알려진 게 아니다.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유튜버가 일방적으로 사건화했다. 그에 대한 피해자 의견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민주당 또는 국민의힘 지지자만 나서서 서로 헐뜯으며 이 사건을 정쟁 도구로 사용하는 상황이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김 의원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분이 계시고, 그분이 피해 구제를 목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요청한다면 나는 박 시장 사건과 다를 바 없이 대응할 것이다."

민주당,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결정 철회해야

-앞서 검찰과 법원의 사건기록 공개를 높게 평가하며, 이것이 박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 외에 피해자 보호와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또 있을까. 

"박 시장이 몸담고 있던 민주당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한다. 또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치르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만들었다. 그것을 지난해 당원 26.35%가 참여한 투표 결과를 토대로 뒤집어버리고, '전 당원의 결정'이라며 이번 선거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 정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한때 민주주의 실현에 목숨을 걸었다는 386 정치인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본인들이 세운 민주주의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신 대표는 이 대목에서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왜 대통령 사과가 필요한가. 

"그럴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8년 충남에서 민주당 소속 도지사에 의한 직원 성폭력 사건이 드러났다. 이어 부산, 서울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만약 충남, 부산, 서울에서 연이어 공금 횡령 사건이 일어났다면 대통령이 지금처럼 침묵했을까. 나는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 여당과 서울시도 책임 있는 자세로 사건 해결에 나설 것이다. 

박 시장이 업무에 사용한 전화기 명의자는 서울시로 안다. 서울시가 휴대전화 포렌식에 동의하면 얼마든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말로는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부분조차 협조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국민의 힘 등 다른 정치세력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그것이 성폭력 문제 해결에 더욱 도움이 될 거라고 보나. 

"누가 낫고 못한 건 다음 문제다. 그보다는 귀책사유 있는 쪽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먼저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의 길이 열린다. 나는 그 부분에서 박 시장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박 시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을 책임졌다면, 그는 피해자 회복 후 우리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택했다. 고인에게 이런 표현을 쓰게 돼 그렇지만, 비겁한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줬다." 

신 대표는 앞으로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해결 의지가 있는 사람이 당선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정치권에 밀레니얼 세대가 더 많이 진출하도록 돕는 일을 해나가겠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 여러 세력이 힘을 모아 시민연합후보를 만들면 좋겠다. 그 후보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성 후보가 늘 여성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달리 말하면 남성도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 여성 후보를 내는 걸로 이 사건을 지우려 하는 건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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