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의 나라 북한, 북한은 개혁 개방을 할 수 있을까? ②
지난 글 →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의 나라 북한, 북한은 개혁 개방을 할 수 있을까? ①에서 '북한은 개혁 개방을 할까'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 화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번 글에서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185353 ]
● 김일성 일가의 당인 조선노동당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사회주의 일반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사회주의에서의 당은 민주주의 국가의 당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21년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곧 대한민국인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 등 기타 정치세력과 여러 사회 시스템의 총합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은 국가 그 자체입니다. 북한으로 따지면 조선노동당이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인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의 일거수일투족은 북한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이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천재적인 예지와 비범한 령도력, 불굴의 의지와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시고 (…) 탁월한 사상리론가, 걸출한 령도자,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조선로동당을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고 주체혁명을 최후승리에로 이끄시는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 왕조적 독재 체제인 북한
이상의 문구에서 보듯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일가의 당이며, 조선노동당이 곧 북한인만큼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나라입니다. 북한이라는 체제를 어떻게 파악할지를 놓고 학자들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전체주의와 술탄주의(술탄은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최고 통치자, 즉 왕의 개념)의 결합으로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데, 이를 쉽게 풀어 말하면 왕조 시스템이 남아 있는 독재국가라는 뜻입니다. 독재는 독재인데 그냥 독재가 아니라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처럼 최고지도자가 왕처럼 떠받들어지는 봉건적 형태의 시스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보면 김일성 일가는 봉건시대의 왕보다도 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과 모자이크 벽화가 건립돼 있으며 주민들은 중요한 날마다 참배하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 얼굴이 들어간 배지를 다는 것이 일반화돼 있으며, 북한 조선중앙TV는 매일 애국가(남한과는 다른 북한의 애국가) 이후 '김일성 장군의 노래', '김정일 장군의 노래'로 방송을 시작합니다. 북한 내에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비판이란 상상할 수 없으며 모든 문학 작품과 영화, 노래, 출판물, 심지어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까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찬양 없이는 내용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사상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김일성 왕국이 되었고 이른바 '백두혈통', 즉 김 씨 일가는 북한 내에서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고 북한 당국이 주입하는 교육에만 노출돼 있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등장할 때마다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는 모습들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북한 내에서 어느 정도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우상화는 세습으로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전임자를 우상화하는 작업을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백두혈통, 이른바 김일성의 후손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체제에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에게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김일성 일가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 작업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에 다른 정치적 파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다른 파벌을 형성한다는 것은 반당, 반국가 행위나 다름없고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돼버린 것입니다.
● 중국 · 베트남, 우상화 크게 문제 되지 않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화 움직임이 일부 있었지만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의 지도자 교체가 이뤄지면서 우상화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또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에는 복수의 통치 엘리트와 파벌이 권력을 공유하는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함으로써 당내 파벌 간 권력 분점과 견제가 작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러한 권력 분점과 견제는 공산당 내에 다양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고,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한 정책 결정과 간부 선발 시 공개 추천과 직접투표, 간부 임기 제한과 연령 제한 같은 중국식 당내 민주주의가 추진되는 발판이 됐습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시 주석에게 다시 권력이 집중되고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도 철폐되는 등 당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중국 공산당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며 개혁 개방을 추진해온 바탕에는 당내 민주주의와 당 개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베트남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민족해방의 상징적 존재인 호치민이 집단지도체제를 강조하며 개인 숭배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우상화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 세습으로 인해 심화된 우상화
하지만 북한의 경우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을 계속하다 보니 우상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당내 파벌 형성이나 당내 개혁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이 지도자가 우상화된 체제에서는 내부 개혁은 물론 외부와의 교류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부 세계와 접촉해 외부의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순간 김일성 일가에 대한 허구적인 우상화는 설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전복을 바라는 이른바 '북한민주화운동' 단체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일이 북한에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는 일이고, 북한이 외부 정보 유입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외부 정보 유입이 북한 체제에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지금의 김일성 일가 우상화 독재 시스템은 외부 정보에 극히 취약하며 폐쇄성을 벗어버리는 순간 존립이 위태로워집니다.
● 개혁 개방, 최고지도자 생각에 좌지우지
당내 민주주의가 전혀 작동할 수 없는 지금의 북한 체제에서 개혁과 개방을 힘 있게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지도자뿐입니다. 이는 최고지도자의 생각에 따라 개혁 개방이 다소 진전될 수도 있지만, 최고지도자가 마음을 바꿔먹으면 개혁 개방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습 독재 체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총비서가 선택할 수 있는 개혁 개방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권력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한, 김정은 총비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 개방이 자신과 백두혈통의 권력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개혁 개방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조선중앙TV, 연합뉴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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