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원칙' 무시한 軍 수사..피의자 인권 '먼 이야기'
피의자 방어권 무력화 정황
강압수사·허위자백 의혹
국방부 "별 문제없다" 판단
이데일리는 최초 제보를 받은 지난 해 4월 말부터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사경찰대대와 국방부 조사본부 관련 의혹을 추적해 왔다. 이를 종합해 작년 11월 23일 총 7가지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본지 보도 직후 국방부 감사관실은 직무감찰을 실시해 두 달여 끝에 최근 조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총 14명에 대해 경고·주의 처분만 내렸을 뿐 주요 혐의에 대해선 대부분 ‘면죄부’를 줬다. 당사자간 의견이 엇갈려 사실 확인이 제한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부실 감찰’ 주장으로 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데일리는 주요 의혹과 감사 처분 논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강압수사·허위자백 강요 의혹
A장교의 주장은 이렇다. 당시 대대 수사과장인 B준위는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는지도 얘기하지 않은채 그를 추궁하며 ‘ㅇㅇㅇ에게 왜그랬어요’라고 다그쳤다. 이에 A장교는 ‘뭘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더니, 그가 ‘성기 만졌잖아요. 만졌다고 쓰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A장교는 ‘그 병사가 먼저 음란한 농담을 던졌고 그에 대해 받아준 것이지 만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B준위는 ‘그때 만졌다고 하던데, 그때 만졌다고 쓰세요. 계속 부인할겁니까’ 등의 강압적 말투로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게 A장교 주장이다.
이후 보직에서 해임 된 A장교는 대대장으로부터 ‘현역부적합으로 전역할 것이니 옷 벗을 준비를 하라’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A장교는 보직해임 과정에서 누가 작성한지도 모르는 ‘중요사건보고’라는 문건을 보게 됐다. 거기에는 자신이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걸 확인했다.
강압수사와 허위자백 강요에 대한 부당함을 느낀 A장교는 대대 수사과 C수사관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인데 수사가 왜 이렇게 진행되느냐’고 토로했다. 그런데 C수사관이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건 재판 가서나 찾으세요’라는 말을 했다는게 A장교 주장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로 사건이 이첩된 이후에도 A장교는 혐의를 부인하자 조사본부 D수사관으로부터 ‘안했어도 했다고 하면, 한게 되는게 대한민국 법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언급이 사실일 경우 군 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된다.
특히 대대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의 참고인인 장교와 부사관을 조사하면서 폭언과 욕설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게다가 참고인 진술서 작성 이후 몇일 이따가 다시 불러 진술서에 기재돼 있는 수사관 이름을 다른 수사관 이름으로 변경토록 하고 다시 서명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당사자들, 관련 주장 전면 부인
이에 대한 본지의 사실 확인 요청에 당사자들은 전면 의혹을 부인했다. 우선 당시 군사경찰대대장은 “면담시 수사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대응을 잘하라”고 했다며 “‘옷 벗을 준비하라’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또 “당시 A장교가 손을 덜덜 떠는 등 불안해 보여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과장인 B준위는 “사실관계 확인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선임권, 혐의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대장의 답변과 마찬가지로 “당시 A장교가 눈물을 계속 흘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라며 “정확한 혐의사실을 고지하는 등 수사 절차를 명확히 할 경우 제2의 사고가 우려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B준위는 “피의자와 참고인에게 진술서 작성 등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욕설 등의 막말을 한 사실이 없다”면서 “(나는) 참고인의 진술서만 받았을 뿐, 사건 담당수사관이 변경된 사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A장교는 눈물을 흘린 사실이 없고 혐의 사실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표현했다는 입장이다. 또 참고인을 실제 조사한 사람은 B준위, PC에 저장된 진술서에는 다른 수사관 이름이, 진술서를 수리한 사람은 C수사관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 될 소지가 있어 C수사관 이름으로 수정토록 요구했다는 의혹이다.
‘대한민국 법’ 운운했다고 지목된 D수사관 역시 “조사를 마친 이후 A장교가 ‘병사가 무고해도 나는 당하기만 해야 하느냐’고 물어 ‘성폭력 수사는 피해자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만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관련 질문은 진술영상녹화 장치 종료 이후 A장교의 변호인이 ‘편하게 얘기하자’며 D수사관에 질문한 것이었다. A장교 변호인 역시 이같이 기억한다. A장교가 물어봐서 답했다는 D수사관의 말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피의자 인권 침해, ‘솜방망이’ 처분
이에 대해 국방부 감사관실은 직무감찰에서 대대 수사과장인 B준위가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고지하지 않은 부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사과정의 투명성과 적법절차를 명시한 군사법원법을 위반했다는 얘기다.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지를 묻는 ‘미란다 원칙’은 수사의 기본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얘기다. 만약 이를 고지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모든 진술과 증거는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향후 재판 시에도 절차적 정당성 문제로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도 국방부 감사관은 B준위에게 ‘경고’ 처분만을 줬다. 특히 감사관은 참고인 진술서상의 수사관 성명을 수정한 사실은 확인된다면서도, 이는 단순 행정 실수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군사경찰 교범상 단순한 진술서 수정도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 당사자 확인 후 날인까지 받아야 하는게 원칙이다.
감사관은 피의자에 대한 강압수사와 허위자백 강요 의혹에 대해서도 서로 진술이 엇갈려 확인이 제한된다는 입장이다. C수사관과 D수사관의 부적절한 발언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조사본부 진술 녹화 영상에는 A장교가 대대 수사관의 허위자백 강요를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감사관은 정상적인 수사라고 판단했다.
한편, A장교는 지난 해 10월 이번 사건에 대해 군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에 의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는 감사관이 B준위와 C수사관, D수사관의 해명을 들은 이후 다시 자신을 불러 이를 확인하는 과정도 생략한 채 조사를 끝냈다는 입장이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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