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제약 벗어난 비트코인.. 다국적 기업일수록 '제약 없는' 화폐 필요
[비트코인 A to Z]
필자가 비트코인의 중요성을 알리는 책을 펴내고 강의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비트코인 가격은 대략 100배 정도 올랐다. 비공인이지만 한국 대학 최초의 비트코인 특강은 2014년 5월 한양대에서 있었다.
필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해 학생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지금은 어떨까. 비트코인답게 등락을 계속하겠지만 1억원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가 됐다.
지난 7년 동안 필자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지만 개중에는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적지 않은 돈을 모은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지만 비트코인이 쉽사리 붕괴되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공부를 시작해 결국에는 생각을 바꾼 이도 더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고치지 않은 채 흥미로운 현상을 구경만 하고 있는 이들이 아직까지도 다수다. 특히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다. 10년쯤 지나면 주류 학문 중 하나가 새로운 기술로부터 파생된 신개념에 대해 완전히 눈멀었었다며 조롱받게 될 것을 확신할 정도다.
화폐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설명 틀은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새롭다 보니 기존의 개념에서는 딱 맞는 모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학 전공자들처럼 화폐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부정적인 결론으로 치닫고 만다.
한편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에 접근한 이들도 처음에는 거부감 없이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는가 싶지만 이더리움을 비롯해 다른 블록체인 프로토콜로 쉽게 관심을 옮겨 버리곤 했다. 비트코인은 가장 오래된 블록체인으로서 진일보한 기술에 의해 대체될 운명이라는 합리적이며 경험적인 추론 때문이다.
화폐 현상으로서 비트코인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결론을 피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화폐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경제학 전공자들이 비트코인을 가장 혐오하는 집단이지만 화폐 현상으로서의 비트코인의 본질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는 이들도 결국은 경제학 전공자들일 수밖에 없다.
화폐의 기본 기능은 교환의 매개, 회계의 단위, 가치 저장이다. 기본적 기능만 따지면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는 기준 미달이다. 물론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다. 기존에 있는 것을 조합해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창발력을 가진 이들도 드물지 않다. 비트코인을 가공·변형·조합한다면 화폐의 기본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경제학 전공자들의 생각처럼 그다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 전공자들은 화폐의 좀 더 근본적인 역할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화폐는 게임의 규칙이다. 규칙은 게임의 전제 조건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이 규칙을 신뢰하지 않으면 게임은 시작하기 어렵다. 화폐금융론은 이 믿음이 형성돼 있다는 전제에서 규칙의 운용에 따라 게임의 양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고민한다.
화폐금융론은 화폐라는 규칙이 주어졌다는 전제에서 이자율과 금융 제도에 기초한 현상을 역학적으로 분석한다. 누가 규칙을 정하고 운용해야 애초에 이 믿음이 형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이 규칙을 국가가 정하면 그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초강대국인 미국이 정하면 된다는 논리로 쉽게 확장된다. 국가가 정한다는 간단한 논리라면 비트코인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화폐는 게임에 참여한 이들의 재산권에 직결되는 사안이고 재산권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거의 맞먹는 자유의 핵심적 구성 요소다. 따라서 정부를 규칙의 최후 보증인으로 여기는 주장에 대해서는 두 개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첫째, 정부도 이 규칙으로 운용되는 게임에 참여하나. 둘째, 국가가 게임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그 규칙을 정부가 운용한다면 다른 참가자들이 이 규칙을 믿을 수 있나.
규칙을 운용하는 주체가 게임의 결과에 대해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게 될 때 생기는 문제를 ‘규칙의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다.
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많은 이들조차 ‘규칙의 근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이유는 우연이 아니다. 참여자들이 규칙을 신뢰해야만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게임 참가자들이 게임을 규정하는 규칙에 관해서라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간주해야만 신뢰가 유지된다. 이 규칙을 의심하라고 가르치는 체계적인 교육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트코인의 잠재력은 어디까지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자세로 연구하게 된다면 그들은 비트코인을 기업들을 위한 특별 인출권(SDR)에 비견할지 모른다. 특별 인출권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운용한다. 회원국들의 화폐 제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결정적일 때 담보 없이 대여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회원국 사이에서는 채무의 변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SDR은 달러·유로·파운드·엔·위안 등 다섯 개의 화폐를 바스켓에 담아 가치를 평가한다. SDR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설계에 관계한 영국의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창한 방코르를 원형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SDR의 존재 자체가 국제 화폐 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내비치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 결제에 달러가 통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와 별도로 SDR이 존재할 실용적인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IMF가 달러를 확보하고 있다가 환위기에 처한 회원국에 달러를 대여하는 것으로 SDR이 의도한 일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달러에 대한 믿음이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달러는 게임의 참여자이기도 한 미국의 국가 화폐다. 외관상으로나마 단일 참가자가 마음껏 조정할 수 없는 규칙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케인스는 방코르가 단지 외관이 아니라 금과 달러를 대체해 실질적으로 국가 간의 변제 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강력한 운영 주체 없이 약속(프로토콜)만으로 운영되는 규칙은 존재하기 어려웠고 국제 결제에 관한 모든 규칙은 제아무리 복잡하게 만들어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국제 정치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SDR을 달러 이상으로 중요한 규칙으로 여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최근 비트코인의 총가치가 SDR의 총가치를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총가치가 아니다. 비트코인은 SDR과 달리 주요 국가들도 자신의 규칙으로 제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정부도 따를 수밖에 없는 화폐의 등장은 심각한 일이다.
정부가 규칙과 게임을 지배했던 그동안 정부에 의해 규칙이 수시로 변경돼 결국 참여자들의 기본권이 훼손되는 일이 없었다면 금본위제로의 회귀로까지 보이는 이런 퇴행적 현상이 애초에 시작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50년 동안의 역사는 정부가 지배하는 규칙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화폐와 금융 위기는 거의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정당성이 허약한 다수의 저개발 국가들에서 화폐 제도가 건전하게 운용되는 경우는 오히려 매우 희귀한 편이다.
국제 교역 속에서 번영하는 다국적 기업일수록 일개 정부의 재량에 구속되지 않는 화폐를 진작부터 필요로 해 왔다. 중국에서 돈을 벌었지만 중국 밖으로 돈을 인출하는 데 보이지 않는 제약이 따른다면 겉으로는 사업이 성공했다고 해도 실제로는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12년 전 몇몇의 천재들은 비트코인의 몇 가지 속성을 검토한 후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열렬하게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연역적으로 추론했다. 그들은 현행 화폐 제도가 야기하는 ‘규칙의 근본 문제’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은 몇몇 천재들의 추론이 평균적인 지식인들의 두뇌를 모두 합친 것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오태민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2020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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