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송전탑 오른 유다인이 절망에서 건진 희망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1. 2. 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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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 정은 역 배우 유다인 ①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정은 역 배우 유다인. 프레인TPC 제공
※ 스포일러 주의

7년간 근무했다. 정은(유다인)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우수 사원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권고사직을 받게 된 후 하청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았다. 1년이다. 그동안 하청으로 파견을 가면 원청으로 복귀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하청 생활도 녹록지 않다. 자기 자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사람들은 정은을 불편해 한다. 정은에게 현장 일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반드시 1년을 채우고 원청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떻게든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정은이 스스로 해내고 살아낸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정은은 비로소 웃음을 되찾는다. 삶의 의미를,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에서 정은을 연기한 배우 유다인은 정은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순간을 차분하게 한 걸음씩 그려낸다.

최근 온라인을 통해 만난 유다인은 그런 정은에게, 정은의 절박함에 이끌렸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홍시쥔·㈜영화사진진 제공
◇ 노동자의 절박함이 와 닿았고,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절박함에 대한 이야기이자 희망을 그리는 영화다. 성실함만으로는 '내 자리'를 지킬 수 없는 현실을 비추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말한다. 이를 유다인이 맡은 정은이라는 인물을 통해 깊이 있게 전한다.

유다인은 "'혜화, 동'도 그렇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제 어려운 싸움을 긴 시간 해 온 분들을 보면서 그분들의 절박함과 절망감이 와 닿았다"며 "비록 전부 다 와 닿지는 못했어도 그분들의 표정, 말 등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부당 파견 된 뒤 그곳에서 굉장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결국 버텨낸 이야기를 다룬 기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했다. 그렇기에 현실 노동자가 겪는 불합리한 문제는 물론이고 해고가 노동자의 생존과 정체성을 어떻게 흔드는지가 영화에 녹아 있다. 유다인이 말한 절박함과 절망감은 이러한 것들을 말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정은이 권고사직을 받게 된 상황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은의 주변 인물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정은은 우수한 사원이었지만 알 수 없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부당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쫓겨난 모든 해고 노동자들의 상황과도 닮았다.

유다인은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정은의 전사가 대사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표현됐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감독님께서는 정은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이유로 손발이 묶인 것처럼 일할 수 없게 된,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를 겪었음을 말씀해 주셨다"며 "부당함에 맞서 같이 싸웠던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다. 그런 전사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홍시쥔·㈜영화사진진 제공
◇ 막다른 길에 내몰린 노동자이자 한 존재의 삶

원청의 압박과 무시도,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운 하청의 일도 견딜 수 있다. 정은에게 가장 무섭고 견딜 수 없는 건 일에서도, 삶에서도 '해고'되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정은은 자신을 향한 독한 말들과 압력에도 앞으로 나아간다. 유다인은 그럼에도 정은이 한 걸음씩 앞을 향해 갈 수 있었던 건 '막다른 길'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정은한테는 막다른 길이었을 거 같아요. 어디로 돌아설 길이 없는 상황인 거죠. 마지막 대사에도 나오지만 가족도 없고, 자기 혼자 앞길을 찾아가야 해요. 물러설 곳이 없는 캐릭터죠. 죽는 것 아니면 물러설 곳 없는 인물이에요."

정은을 나아가게 한 건 단지 그런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 정은은 하청에서 살아남기 위해 송전탑에 올라야 한다. 200m가 넘는 높이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은 정은에게 큰 공포를 가져다준다.

위압적인 송전탑 앞에 선 유다인의 감정도 정은과 유사했다. 그는 "송전탑이라고 하면 보통 멀리서 보거나 크게 관심을 안 가졌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거대해서 위압감이 컸다. 정은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겠다, 공포가 갑자기 확 밀려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스틸컷. 홍시쥔·㈜영화사진진 제공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송전탑을 올라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생존'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가 정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망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는 막내(오정세)의 대사는 노동자가 처한, 정은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유다인은 "그들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고는 곧 죽음'이 당연했을 것 같다"며 "정은도 막내와 마찬가지로 삶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막내의 대사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정은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유다인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바 있다. 매일 출근하고, 해야 할 업무가 있는 직장인과 달리 배우란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일을 줘야 연기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정은의 상황과 맞물리며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유다인은 "극 중 정은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일을 줘야 일을 하죠'라는 대사에서는 특별히 공감했던 거 같다"며 "연기를 한 지 햇수로 17년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1~2년 정도 쉬었던 기간도 있었다. 일을 하고 싶은데 누가 나를 써주지 않으면 못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공감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정은 역 배우 유다인. 프레인TPC 제공
◇ 살아남은 자를 통해 만나는 위로와 희망

영화 속 정은은 표정이 많지 않다. 무채색에 가깝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의지마저 무채색인 것은 아니다. 그러던 정은이 송전탑을 처음으로 오르고 난 후, 홀로 길을 걸으며 진하게 미소 짓는다. 애써 억눌러 온 정은의 마음을 보게 된 것 같은 순간이다. 그 순간 내내 안타깝고 먹먹하던 관객들의 감정도 잠시나마 풀어지게 된다.

"하청 업체에 와서 성과를 내거나 칭찬을 듣거나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 실천하고 있다, 행동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소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은은 잘 웃지 않고 차가운 캐릭터죠. 촬영 감독님도 저의 무표정한 모습만 찍다가 잠깐의 웃는 모습을 보고 '정은에게 이런 표정도 있었어?'라는 말씀을 툭 건네시더라고요. 그때 저도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는 정은으로 시작해 정은으로 마무리 짓는다. 정은을 따라가는 영화다. 정은을 뒤쫓으며 카메라는 갑과 을로 이어진 원청과 하청의 관계, 권고사직과 불법파견에 얽힌 그림자, 위험의 외주화, 노노 갈등, 고용불안과 직장 내 성차별 등 한국 사회와 노동자들의 이면을 비춘다.

유다인은 "실제로 최근에도 하청업체 직원의 사고도 있었는데,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예전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이런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좋아지면 좋겠다. 우리 영화가 나왔을 때 영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가 더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영화가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어쩌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극장을 나가는 발걸음에 힘이 생길 거 같은 영화예요. 제 개인적으로도 많이 공감했고,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렇기에 관객분들께서도 꼭 저희가 느꼈던,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을 같이 공감하고 같이 위로받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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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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