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코로나 검사법으로 성감별받은 블랙스완 7남매
깃털에서 유전자 체취한 뒤 성염색체 분석
검은고니, 펭귄, 맹금류 등 암수 판별
작년부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생활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전문가들만 쓰던 낯선 과학용어가 일상에서도 등장한 것도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기법인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유전자 증폭)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부터 PCR기법은 동물원에서도 요긴하게 사용됐습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좀체 알기가 어렵지만, 어떻게든 알아내야 할 때, 하지만 동물의 신체에 자칫 무리를 줄까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성감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얼마 전에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동물들들이 PCR기법으로 암수 여부가 판명됐는데요. 호주가 원산지인 검은고니입니다. 문학작품이나 영상 매체를 통해 굳혀진 이미지 때문에 덤으로 인기를 얻는 동물들이 곧잘 있습니다. 검은고니도 이런 덕을 톡톡히 보는 새입니다. S자형으로 볼륨있게 구부러진 기다란 목과 우아한 날갯짓, 물위에 도도하게 떠 있는 모습 때문에 고니는 사람들이 매우 선망하는 물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니·큰고니·혹고니 등 세 종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겨울한철을 보내러 찾아옵니다. 눈처럼 흰 깃털을 한 이새들을 통칭해서 흔히 백조(白鳥)라고도 부르지요. 하지만 검은고니는 이름이 말해주듯 백조가 아닌 흑조(黑鳥)입니다. 다른 고니류와 비슷하게 맵시있는 몸매를 뽐내지만, 부리와 다리를 제외한 전신은 새까만 털로 뒤덮여있습니다. 이 모습에서 사람들은 치명적 매력을 발견했나봅니다.
차이코프스키의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팜므 파탈’로 나오는 오딜이 바로 흑조입니다. 검은고니는 2010년에는 영화를 통해 세계적 인기를 얻습니다. 흑조의 비중을 파격적으로 높인 ‘백조의 호수’에 출연하는 젊은 발레리나의 광기와 집착, 몰락을 그린 스릴러 영화 ‘블랙 스완’의 주연 나탈리 포트먼이 흑조 역할 발레리나 역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주요 영화상을 휩쓴 것이죠. ‘검은 고니’의 영어 이름인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떡하니 벌어지는 현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중에도 ‘블랙스완'이라는 곡이 있고, 아예 ‘블랙스완’이라는 이름을 가진 K팝 걸그룹까지 데뷔했습니다.
이렇듯 ‘치명적 매력을 가진 우아한 새'로 인기 몰이중인 검은고니 한쌍이 지난 10월 낳은 알 7개가 무사히 부화했습니다. 2013년 이후 첫 번식 성공 인데다 마릿수도 럭키세븐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들이 7자매인지 7형제인지 7남매인지, 만일 7남매라면 몇남 몇녀인지 즉각 아는 건 어려웠습니다. 조류이면서 새끼였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공작·원앙·닭·꿩·오리처럼 암수 구분이 확연한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상당수 새는 육안으로 암수를 구분하는게 어렵습니다. 신체 특성상 생식기가 몸밖으로 돌출돼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 생식기 부분을 들춰내려 할 경우 경우 신체가 손상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새끼들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에 PCR기법을 이용한 검사가 아주 유용합니다.
새끼들이 제법 자란 지난달 서울대공원 동물원 종보전연구실의 검사팀에서는 일곱마리 새끼들에게 쌀톨만한 마이크로칩을 심고, 발목에 개체인식표를 부착했습니다. 그리고 각 개체에서 뽑은 깃털의 모근(毛根)에서 DNA를 추출했습니다. 그 DNA의 성염색체를 증폭시켜 암컷인지 수컷인지 여부를 판별했습니다. 콧속에서 채취한 검체의 DNA를 증폭해 코로나 확진 여부를 가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깃털만 뽑으면 되기 때문에, 동물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이 거의 없고, 동물을 통째로 검사 시설까지 옮겨야 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겪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의 경우 성염색체의 구조가 여성은 XX, 남성은 XY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새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수컷이 ZZ, 암컷이 ZW입니다. 사람과 정 반대로 암컷이 서로 다른 조합, 수컷이 동일 조합으로 돼있습니다. 이 절차를 통해 지난해 10월 태어난 일곱마리는 ZW 염색체를 가진 암컷 다섯마리, ZZ 염색체의 수컷 두 마리, 5녀 2남으로 확인됐습니다. 지금은 보송보송한 회색깃털에 검은색 부리를 하고 부모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는 이 아기 검은고니들은 올 연말쯤 되면 어미와 아비처럼 새까만 몸색깔과 선명한 빨간 부리를 한 매력적인 흑조가 될 것입니다.
조류 성감별은 새끼들만 하지 않습니다. 이달 중순에는 2019년생 홍따오기 한마리가 종보전연구실 PCR검사를 통해 만 두 살이 돼서야 수컷으로 확인됐습니다. 성감별이 중요한 이유는 종 보전과 번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멸종위기종 흰꼬리수리의 추가 반입을 추진하면서 ‘0순위’로 점찍었던 대구 달성공원 흰꼬리수리의 성별을 먼저 파악하기 위해 깃털을 공수해와 PCR검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과천에 있는 네마리가 모두 수컷이기 때문에 2세 번식을 위해선 암컷이 필요했거든요. 공교롭게도 대구 흰꼬리수리도 수컷으로 판명되면서 서울행은 무산됩니다. 동물원에게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 이상 굳이 독수리 5형제를 끌어모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공원에서는 축적된 성감별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동물원·수족관의 성감별도 위탁해서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내에 있는 한 수족관에서 전시 중인 훔볼트 펭귄 18마리가 두 차례에 걸쳐 성감별을 받아 암컷 8마리·수컷 10마리로 확인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력이 한번에 갖춰진 것은 아닙니다. 시행착오를 이겨낸 부단한 연구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서울대공원 종보전 연구실의 유미현 주무관은 “특정 종마다 성감별에 효능이 뛰어난 시약이 있는데, 이를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사실”이라며 “초기에는 판별 불능 판정이 나오거나 오류가 나오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큰 도움을 준 것은 먼저 저 세상을 떠난 새들의 사체였다고 합니다. 사체 부검 과정을 통해 암수 여부를 확인하고 이 종(種)에 맞는 맞춤형 검사법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죠. 자신은 생을 마감하지만 몸뚱아리를 통해 후세 보전에 도움을 줬으니 이야말로 라이온킹에서 강조되던 대자연의 섭리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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