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그들은 왜 방역에 실패했을까..바이러스와 사회적 신뢰

김원장 2021. 2.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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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결국 바칼로레아(대입 자격시험)를 간단하게 치르기로 했다. 지난 한 주 간 프랑스는 하루 평균 430명이 사망했다. 영국은 지난 1주일 동안 하루 평균 1,174명이 죽었다. 지난 1일 하루에만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모두 51,48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말해 뭐할까. 미국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사망자가 40만 명을 넘었다. 우리보다 잘 사는 그들은 왜 무너졌을까.

1.기술적인 이야기부터 해보자.

그들은 초기 확진자 추적에 실패했다. 뒤늦게 과학이 동원됐다. (그들에겐 세계 최고의 IT기업들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애플과 구글이 연합해 서로 안방문을 열었다. iOS와 안드로이드 장치 간 연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했다.

간단하다. 휴대폰에 이 앱을 다운받아 블루투스를 켜놓으면 누가 누군가의 옆에(1미터쯤) 있었단 정보가 모두 서버에 저장된다. 그중 확진자가 나오면 안전하게 정보가 전송되고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문이 전송된다. 전세계 50여개 나라들이 지난해 봄부터 이런 비슷한 앱을 개발 보급했다.

그런데 잘 안쓴다. ‘인간의 자유와 사생활’이 ‘목숨보다’ 중요한 유럽 시민들은 특히 잘 안쓴다. “내가 어딘가를 다닌 기록이 공유된다는 것은 우리에겐 지하철에서 옷을 벗는 것과 같아요”

프랑스 총리(장 카스텍스)는 자신이 이 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은 지하철 같은 다중
이용시설을 잘 이용하지 않아서란다.(프랑스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더 하자). 이 앱이 효과를 보려면 집단면역 처럼 60% 이상의 시민들이 이 앱을 다운로드하고 블루투스 기능을 켜놔야 한다. 시민들이 정부와 지역사회를 믿어야 한다. 이게 잘 안된다. 그러니 확진자 추적이 잘 안된다.

아직도 확진자가 누가 누굴 만났는 지 제대로 못 찾아낸다.(타이완은 확진자 1명으로 평균 17명의 접촉자를 찾아내는데, 영국은 2명 프랑스는 1.4명이다. 미국은? 미국은 1명 미만이다./자료: 네이처) 밀접 접촉자를 못 찾아내면 초기 확산을 못 막는다. 이렇게 무너진다. 왜 정부를 못 믿는 걸까?

싱가포르도 비슷한 앱이 있다. '트레이스 투게더'(이름도 참, 우리 함께 추적당해요?) 휴대폰용 앱 뿐만 아니라,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 가면 ‘토큰’이라는 동선 추적장치를 나눠준다. 말 잘 듣는 싱가포르 국민들은 80% 넘게 이 디바이스를 이용해왔는데, 얼마전 싱가포르 정부가 ‘살인 등 7가지 중대 범죄’에 대해선 이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내놨다. 이러니 정부를 믿겠나.

싱가포르의 추적 디바이스 ‘토큰(Trace together)’의 시스템 그래픽 (출처: BBC)


우리는 왜 이런 앱을 만들지 않을까? 우리는 사실 이런 게 필요 없다. 만약 확진자가 나오면 정부는 아예 그 사람의 휴대폰 위치정보를 다 들여다본다. 지하철 탑승 기록이나 그사람 신용카드 이용실적까지 확인한다. 이렇게 그날 이태원을 다녀간 6,065명의 위치정보를 다 알아냈다. 인천의 학원강사나 강남의 룸살롱 종사원의 거짓말도 다 이렇게 드러났다.

우린 합법적(감염병예방법)으로 이게 다 가능하다. 만약 (우리 어머니가 사시는) 대전시 유성구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우리 방역당국은 확진자 또는 밀접 접촉자의 주민번호는 물론 주소와 전화번호 출입국 관리기록까지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앱을 만들어 굳이 블루투스 켜놓을 이유가 없다(서울시가 My-T라는 교통앱을 만들기는 했다). 결론적으로 선진국은 확산 예방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바이러스의 침략을 받았다. 반면 우리는 지난해 정부의 조사에서 ’90% 이상이 코로나 관련 개인정보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 앞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급하고 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중대본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확진자 동선 범위를 계속 수정했고, 지난 10월 개인정보 보호에 중점을 둔 확진자의 정보공개 지침을 만들었다)

2. 엉터리 방역 사슬

알고보니 미국이나 유럽은 순 엉터리였다. 환자가 속출하자 엉터리 방역시스템이 하나 둘 드러났다.

'뉴저지의 방역 당국은 구조적으로 확진자 동선 확인이 쉽지 않다. 어렵게 몇 명의 밀접접촉자의 연락처를 찾았다. 전화를 시도한다. 불법이민자 등 상당수 시민이 연락이 안된다. 연락이 닿은 시민들도 비용들을 우려해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 그 중 몇 명이 검사에 응하고 양성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입원할 공공 병상이 없다‘

'당신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됐으니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라고 권한다. 그런데 이민자나 대다수 저소득층 근로자들은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서비스업은 재택근무가 안된다.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배달이나 돌봄, 마트의 고용원(essential-employees)들은 대부분 서비스업이다. 집에 돈이 바닥났다. 슬그머니 출근한다. 그 직장은 며칠 뒤 쑥대밭이 된다.'

의료시스템도 부실했다. 이탈리아는 일본 다음으로 고령화 사회다(미국인 평균연령은 38세인데 이탈리아인 평균 연령은 47세다). 그런데 1인당 병상수는 고작 3.2개였다. 우리 1/4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큰 수술을 해도 완치하기 전에 퇴원하는 게 관행이다. 그런 나라에 바이러스가 침략했다.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실 공공의료시설은 우리도 형편없다. 공공병상의 비중이 일본은 27.2%, 독일 40.7%, 프랑스 61.6%, 미국은 21.5%인데 우리는 전체의 10%가 안된다. (OECD 2017년)

하지만 우리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지방의 낙후된 병원이나 대부분의 진료와 수술, 처치비용이 똑같은 나라다. (신라호텔과 충남 천안의 모텔이 국민 모두에게 동일한 숙박료를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선진국보다 훨씬 건강한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작동했다.

우리가 ‘회사가 알면 어쩌지’를 걱정하는 동안, 시카고의 확진자는 ‘입원하고 나면 차를 팔아야 할텐데’를 걱정한다. 실제 미국의 코로나 환자 평균 입원비는 3만 8천달러에서, 만약 보험이 없다면 7만 3천 달러까지 올라간다.(물론 다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 등과 협의한다). 자국의 의료시스템을 불신하는 나라에서 확진자 통제가 잘 작동될 수 있을까?

우리는 대략 중증 환자 1명에게 1천만 원 정도의 입원진료비가 청구된다. 이중 80%는 건강 보험이, 나머지 20%는 정부가 부담한다. 지난해 6월 KBS와 ‘시사인’의 조사에서 ‘우리 건강 보험체제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이 88%나 됐다. 위기가 닥치니 그게 참 쏠쏠하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의 한 상점앞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입간판에 ‘서로 존중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3. 사회적 신뢰

(다시 앞 사례로 돌아가서) 그런데 미국의 그 불법이민자는 왜 보건당국의 전화를 받지 않을까? 그가 미국 정부로부터 기대하는 혜택보다 미국 정부로부터 받는 위협의 정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뢰의 문제다. 실제 미국에서 양성판정을 받은 시민의 절반 이상이 자세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영국의 자가격리 대상자 중 61%가 당일 집을 떠난 적이 있다 (자료: 네이처). 심지어 백신을 맞으라고 연락해도 잘 믿지 않는다. 위기 앞에서 그 사회가 서로 얼마나 믿고 살았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생각해보자. 평소에 건강보험이 없는 국민이 "당신은 밀접접촉자로 분류됐습니다" 라는 안내 전화를 받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한 사회가 감염사슬에 얽힌 소외계층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사망비율이 백인보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월등히 높은 나라에서 국가는 이들의 방역 일탈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사회적 신뢰는 거의 모든 방역과정에서 작동한다. 밀접접촉자를 선별하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용역회사를 가정해보자. 용역비를 더 받기 위해 ‘통화의 내용’보다 ‘통화의 건 수’에 집착 한다면 이 선별작업은 그만큼 정확성이 떨어진다. 이 용역회사의 신뢰도가 방역의 구멍을 만든다(우리는 구청 직원이 밤새워한다).

알랭피셔 프랑스백신자문위원장은 ‘백신의 효능에 의구심이 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심지어 프랑스는 백신 자문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과학자로서 ‘백신의 효능에 의구심이 든다 ’고 밝혔다. 프랑스인들은 다국적회사들의 백신 돈벌이에 자신들이 이용된다는 생각이 유독 강하다. 프랑스의 백신 접종률은 다른 유럽국가들 중에 단연 꼴찌 수준이다. 위기 앞에서 개인의 다양성과 사회적 신뢰가 헷갈린다.

하긴 미국의 대통령은 마스크도 불신하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부통령이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통령은 전염병 연구소장의 말을 안 믿는다. 이쯤되면 바이러스와의 연대다. 무슨 이유로 서로 신뢰하겠는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뢰의 팬더믹일지 모른다.

이런 저신뢰 사회는 뭔가 큰일을 못한다.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기가 쉽지않다. 이런 의심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갈등을 낳는다. ‘빌게이츠가 백신을 팔아먹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루머를 믿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과 '대선결과를 부정하며 무장한 시민들이 의사당을 난입하는 것'은 결코 상관 없는 일이 아니다. 쿠오모 주지사 말처럼 "우리는 연결돼 있다(We are connected)".

지난해 9월 미국의 시민운동가들이 워싱턴에서 코로나로 숨진 20만명을 추모하는 시설물을 설치했다. 그후 다섯달 뒤 미국의 사망자는 40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사회적 신뢰가 높은 나라는 서로 믿고 연대한다. 지난해 6월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이번 기회에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갈 것이다’라고 믿는 시민의 비율이 68.2%나 됐다.(그렇지않다 29.6%/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 위기가 닥치자 정부를 믿고, 구청직원을 믿고, 길에서 만난 타인을 믿는다. 그래서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

고 김기원 선생의 말처럼 고단(노동)하고 억울(분배)하고 불안(복지)한 이 국민들은 왜 서로를 이만큼 신뢰하게 됐을까? 누구는 우리가 (하도 침략당하고 억압받은 민족이라서) 위기가 닥치면 잘 뭉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를 ’고난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성장의 결과를 너무 간과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소설 같은 위기에 우리는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

서로 잘 믿는 국민들은 동일한 생산요소를 투입해도 잘 못믿는 국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한다. 누군가를 서로 신뢰하는 지수가 10% 증가하면 경제가 0.8%포인트 더 성장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테판 낵과 필립 키퍼의 80~92년 성장률과 사회적 신뢰와의 관계 추정/출처:세계은행) 남보다 덜 망해서 상대적으로 순위가 올라간 것이 민망하긴 하지만, 우리는 이 위기 통에 이탈리아나 캐나다, 호주보다 더 큰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이 한국의 백신 접종이 선진국보다 더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비슷 하다. 서로를 잘 믿는 국민들은 백신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확한 매뉴얼대로 접종하고, 접종 후 추적 관리에 협조하고, 합리적으로 부작용에 대처할 것이다. 바다 건너 우리보다 잘 사는 그들이 의심하고 싸우고 분열되는 순간에, 고난 공동체 국가 국민들은 또 그렇게 살아남을 것 같다.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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