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대통령이 되려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박원 2021. 2.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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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지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매경DB, 경기사진공동취재단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53] 대통령선거가 1년 넘게 남았지만 잠룡들의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합니다. 야권에서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없지만 여권에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지지사, 정세균 국무총리가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지지율 조사에서는 이 지사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사이다 발언이나 참신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 비해 이 지사는 기본소득과 보편적 재난지원 등을 외치며 인기 몰이에 나선 결과로 볼 수 있겠죠. 정 총리는 여론조사에서 제외돼 있어 파괴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진검 승부는 그때 시작되는 것이지요.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많겠지만 결국 국정 운영을 위해 얼마나 잘 준비했느냐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랜 숙성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 민심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지요.

뛰어난 지도자는 반드시 준비 과정을 거칩니다. 춘추시대 2대 패자였던 진문공은 무려 19년의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오랜 숙성 기간 덕에 군주에 오른 지 10년 만에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습니다. 3대 패자로 등극한 초장왕도 비슷한 과정을 밟습니다. 숙성의 스타일이 달랐을 뿐이지요. 초장왕은 권좌에 오른 뒤에서 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한번 날면 반드시 하늘까지 닿을 것이며, 3년을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선친인 초목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초나라는 권력 공백이 생깁니다.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왕권은 급격히 약화됐습니다. 반란도 일어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오른 초장왕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신세였습니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그는 간신을 몰아내고 충직한 신하를 중용해 난군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누가 간신이고 누가 충신인지 옥석을 가려야 했습니다. 그가 집권 초기에 일부러 '광인 전략'을 쓰기로 한 이유입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조당에 이렇게 경고문을 써 붙였습니다. "감히 간언을 올리는 자가 있으면 용서 없이 주살할 것이다." 그리고 국정을 전혀 돌보지 않고 음주가무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대부 신무외가 초장왕을 알현했습니다. 초장왕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자 그는 말합니다. "어떤 이가 저에게 수수께끼 하나를 들려주었는데 풀 수가 없어서 왕께 말씀 드리려고 왔습니다. 큰 새가 있는데 몸은 오색 깃털로 싸여 있고 우리 초나라의 높은 언덕에 머문 지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초장왕은 금세 무슨 말인지 파악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삼년불비 비필충천, 삼년불명 명필경인(三年不飛 飛必沖天, 三年不鳴 鳴必驚人)'은 신무외가 자신을 풍자한 수수께끼에 대한 답변입니다.

신무외의 우회적인 비판에도 초장왕의 행태가 변하지 않자 이번에는 돌직구 스타일의 충신이 나섰습니다. 소종이라는 사람이었죠.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이 어리석다며 통렬하게 간합니다. "대국을 다스리는 왕께서는 지금 주색에 빠져 정신이 없고 인재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밖에서는 큰 나라가 우리를 공격하고 작은 나라는 배반을 일삼고 있습니다. 한때의 즐거움에 빠져 만세의 이익을 내버리고 있으니 이게 어리석지 않으면 무엇이 어리석겠습니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간하는 신의 어리석음은 제 한 몸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왕께서 저를 죽이시면 후세 사람들이 장차 저를 충신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반면 왕의 어리석음은 일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제 할 말은 다했으니 칼을 빌려주시면 직접 목을 찔러 왕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소정의 진심을 읽은 초장왕은 즉시 태도를 바꿉니다.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그는 음주가무를 즉각 중단하고 그동안 아부했던 측근들을 모두 내칩니다. 음주가무를 함께했던 정희와 채녀를 멀리하고 번희라는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삼아 내명부를 관리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인이 사냥을 좋아할 때 번희만 내게 간언을 올리고 따라가지 않았다. 또한 사냥해온 동물의 고기를 끝까지 먹지 않았으니 나의 어진 내조자다." 이는 그가 3년간 광인 전략을 썼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초장왕은 여인들을 처분했던 원칙과 기준에 따라 충신을 발탁했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합니다. 초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던 겁니다. 바야흐로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고 긴 숙성의 시간을 보냈던 '붕새'가 비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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