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90% 가해자도 전액보상..車보험료 오르는 이유 있다
[편집자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효과로 교통사고 건수가 줄었다. 그럼에도 자동차보험은 여전히 적자상태를 면치 못한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경상환자의 과잉진료 등으로 인해 사고당 평균 보험금은 오히려 늘어서다. 경미사고로 인한 보험금 누수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제도개선 방안을 찾아본다.
자동차보험은 매년 보험료가 꾸준히 오르는데도 누적 10조원이 넘는 만성적자에 시달린다. 소비자들이 내는 보험료보다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험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은 과실비율이 90%에 달하는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의 자동차보험으로 기한과 금액의 제한 없이 치료비 전액을 보상한다. 만들어진 지 40년도 넘는 법안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과잉진료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2400만대 시대, ‘40년 묵은 법’으로 소비자보호
국내에서 자동차보험이 지급하는 치료비는 민법상 ‘과실책임주의’의 적용 예외 대상에 해당한다. 과실이 있다면 본인의 과실비율만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과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액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언뜻 보면 불합리해 보이는 이 같은 제도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7년에 도입됐다. 당시에는 국내에 자동차 등록대수가 27만대에 불과해 대다수의 사고는 차와 사람 간 벌어져 교통사고를 당하면 중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의 배상능력이 부족해 피해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인명구제 차원에서 보험사가 기한과 금액의 제한 없이 치료비를 지급 보증하는 제도가 생겼다. 당시에는 이를 악용할 가능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교통사고 환자는 진단서 등의 ‘객관적인’ 근거가 없어도 ‘주관적인’ 통증을 호소하면서 장기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치료비를 전액 보상받아왔다. 특히 자동차보험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과 표준약관에 따라 과실비율 100대 0의 일방과실 사고만 아니라면 90% 과실을 저지른 가해자도 피해자의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전액 받는다.
업계에서는 현실과 동 떨어진 이 같은 법안이 과잉진료를 부추긴다고 본다. 교통사고의 양상이 지난 40년간 크게 달라졌지만 법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40년 전의 100배에 가까운 2400만대에 달한다. 교통사고도 차량과 사람 간 사고가 아닌 차량 대 차량의 사고가 많다. 2019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90% 이상이 차대차 사고로 조사됐다. 환자의 비중은 염좌(삠)나 타박상 등 경상환자가 전체의 95%를 차지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이용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져 자동차보험 치료비 보상제도는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일부 교통사고 환자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를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과는 달리 과잉진료 방지를 위한 제도가 없다”며 “특히 경미사고나 한방진료를 중심으로 보험금이 급증하고 있어 결국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재보험의 경우 자동차보험과 달리 치료기간을 연장할 경우 의료기관이 근로복지공단에 진료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하고 있다. 또 자기부담금 제도를 운영중인 건강보험과 비교했을 때 자동차보험은 동일한 경미 상해를 당했을 때도 1인당 진료비가 4.3~4.8배 가량 더 많이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제 안되는 과잉진료, 수가기준 마련 시급
보험업계는 나이롱환자(가짜환자)를 중심으로 줄줄 새는 보험금을 막기 위해 과실책임주의를 재정비하고, 자동차보험의 수가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한다.
해외 주요국가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과실책임주의를 운영 중이다. 가해자의 과실이 큰 교통사고는 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제한한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과실책임주의에 따라 보험금 지급을 달리한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과실 책임주의를 다르게 적용하는데 주 등 콜로라도 등 34개주는 피해자의 과실비율이 일정비율 이상일 경우 가해자의 보상의무를 제한한다. 워싱턴DC 등 5개주는 피해자의 과실이 1%라도 있을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전혀 배상받지 못한다.
영국은 자동차사고에 대해 과실책임주의를 적용하고 있고, 일본도 임의보험에 대해서는 과실책임주의를 적용한다. 의무보험은 과실책임주의를 적용하지 않지만 피해자의 과실비율이 클 경우 보험금을 줄이는 중과실 감액제도를 운영 중이다.
수가기준 마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건강보험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의 검토와 평가를 거친 수가 기준이 운용되지만 자동차보험은 수가기준을 만드는 데 별도로 규정된 절차가 없다. 국토교통부가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고시를 개정해 별도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과잉진료비를 삭감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업계는 진료수가 기준이 없거나 불분명하면 별도의 심사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건강보험과 달리 자동차보험은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거의 안 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판단한다. 건강보험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요양급여의 수가, 인정기준, 적용범위 등을 결정하지만 자동차보험은 국토부에서 결정해 고시하면 끝이다. 자배법상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 의견 청취를 할 수 있지만 이외에 별도로 규정된 절차는 없다.
특히 최근에는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 과잉진료가 늘어나면서 시술횟수와 시술기간 기준 등 한방 진료항목에 대한 구체적 세부기준을 마련하는 수가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수가기준은 첩약의 경우 1회 처방 시 최대 10일까지 처방할 수 있어 일괄적으로 10일을 처방한 후 약을 복용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약침도 투여횟수, 대상상병, 용량 등 기준이 없다. 같은 증상이라도 횟수, 기간 등의 시술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시민단체 ‘소비자와 함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방 환자 4명중 3명은 첩약을 버리거나 방치하고, 본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60%는 ‘아예 받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모텔간 고교생·교사…서로 "당했다" - 머니투데이
- '故박지선' 비하한 BJ철구 두달만에 복귀…"돈 떨어져서 왔다" - 머니투데이
- 김동성 양육비 언급에 등장한 전 아내…"거짓말, 방송 안 나왔으면" - 머니투데이
- 보름달 보려다…트랜스젠더 가수 소피, 발 헛디뎌 사망 - 머니투데이
- 강남서 20대 여성 사망…현장엔 '필로폰·주사기' - 머니투데이
- 큰 돈 번 줄 알았는데…대박난 '삐끼삐끼', 원곡자 토니안이 놓친 것 - 머니투데이
- 전국 뒤흔든 '363명' 희대의 커닝…수능 샤프의 탄생[뉴스속오늘] - 머니투데이
- 20만 유튜버의 민낯…13세와 동거, 동물학대 이어 '아내 폭행' 또 입건 - 머니투데이
- "나이도 찼으니 진짜 부부 어때" 송승헌·조여정 반응이… - 머니투데이
- 4개월 만에 보합세 접어든 경기도 아파트 가격.. 하락 전환 눈앞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