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성근 판사 "사직하겠다".. 김명수 "그럼 탄핵 안되지 않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작년 4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직접 사표를 내자 “내가 사표를 받으면 (임 부장판사가)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며 반려했던 것으로 2일 알려졌다.
국회는 현직 법관만 탄핵을 소추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작년 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판사들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자 “국회가 탄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은 1년 가까이 흐른 뒤인 지난 1일 대상 법관 중 한 명이었던 임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김 대법원장의 사표 반려는 그와 같은 여당 기류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대법원으로 김 대법원장을 찾아가 “몸이 아파 법관 일을 하기 어렵다”며 사표를 냈다고 한다. 임 부장판사는 당시 건강 악화로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은 “지금 국회에서 (사법 농단 연루) 판사 탄핵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사표를 받으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성근 탄핵 발언’이 있었던 이후 임성근 부장판사는 병가를 냈고, 작년 말 법관 연임을 포기해 이달 말 퇴임할 예정인 상태에서 탄핵 대상이 됐다. 한 법원장은 “결국 김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의 해당 발언은 작년 하반기부터 법원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전해 들은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법관 독립을 지키는 대법원장이 현직 판사 면전에서 탄핵을 말했을 리 없다” “사실이라면 김 대법원장이 탄핵감”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부 판사들은 “대법원장이 인간적으로라도 임 부장에게 이럴 순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 때문이었다.
◇김 대법원장, 임성근에 “청문회 도와달라”
복수의 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2017년 본인의 국회 인사청문회 전후로 사법연수원 2년 후배인 임 부장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해 친분 있는 야당 의원들을 접촉해 설득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임 부장판사는 이 부탁을 들어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밑에서 일했던 당시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역시 김 대법원장의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해 다수의 야당 의원들을 접촉했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은 A 부장판사에게도 전화해 ‘야당 위원들을 설득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행정처 심의관(평판사)들도 총동원됐다고 한다.
◇취임 후 ‘피의 숙청’
김 대법원장은 본인의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7년 9월 21일 밤 행정처 판사 거의 전원(30여명)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제가 대법원장이 되면 피의 숙청, 인사 태풍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달여 뒤인 그해 11월 1일 그는 일선 법원장 발령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이민걸 전 기조실장을 재판부도 아닌 ‘사법 연구’로 좌천 발령 냈다. 당시 법원 안에선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이틀 뒤인 11월 3일 양승태 대법원에서 벌어졌다는 ‘사법 농단’에 대한 2차 조사를, 이듬해인 2018년 1월 3차 조사까지 지시했다. 김 대법원장은 2018년 초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고등법원 부장판사 교육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법원을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2018년 6월 ‘사법 농단’ 의혹을 검찰로 넘겼다. 100명 넘는 판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한 법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돌아와 우는 판사들이 많았다. 이후 상당수가 법원을 떠났다”고 했다. 이 중 ‘양승태 대법원’에서 일한 10명의 판사는 직권남용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대법원장의 인사청문회 통과를 도운 판사도 포함됐다. 이민걸 전 실장의 경우, ‘사법 연구’ 중이던 2018년 5월 옛 통진당 재판 개입 혐의 등으로 법관징계위에 회부돼 2018년 12월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어 2019년 3월 거의 같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2018년 8월 김 대법원장에 의해 징계위에 회부됐다. ‘임성근을 징계위에 올리라’는 김 대법원장의 요청을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이 거부하자, 대법원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회부했다. 징계 사유는 임 부장판사가 야구선수 오승환씨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 담당 판사는 법관징계위에서 “부당한 간섭은 없었고, 임 부장판사의 조언이 재판에 도움이 됐다”고 했으나 견책 징계가 내려졌다. 임 부장판사는 이 혐의와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칼럼을 쓴 산케이신문 기자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도 기소됐다가 작년 2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임 부장판사는 몸무게가 30㎏ 빠졌고 수술도 받은 상태에서 작년 4월 김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내러 찾아갔다가 ‘탄핵’ 얘기를 들은 것”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본지에 “작년 임 부장을 면담한 건 맞지만 오간 얘기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임 부장판사는 “일절 확인할 수 없고, 보도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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