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최초 '탄핵 법관' 나오나..칼자루 쥔 헌재
'정치적 의도 개입' vs '사법개혁 기폭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을 향한 국회 움직임이 심상찮다. 대법원이 '법관 탄핵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권한'이라는 의견을 밝힌 상태다. 탄핵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 수만으로도 국회 통과를 위한 의결 정족수를 넘긴 상태라 법관 탄핵의 공은 국회를 거쳐 헌재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법관 탄핵 선례가 생긴다면 정권이 법관 독립을 위협할 무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사법개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5년 일선 재판에 개입해 법관 독립을 침해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2019년 3월 불구속기소 됐다. 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기사를 써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1심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이외에도 2015년 쌍용차 집회와 관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에 대한 체포치상 사건, 유명 프로야구 선수에 대한 도박죄 약식명령 공판절차 회부 사건 등에서 판결 내용을 수정해 선고하도록 지시하는 등 법관 독립을 침해한 혐의도 받았다.
지난해 2월 임 부장판사 사건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를 사실로 판단하고 이를 '위헌적 행위', '징계 사유'라고 질타했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죄는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만들었을 때 성립하는 범죄로 입증이 까다로운 죄다. 사태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 대부분에게 적용된 혐의로, 이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른 요인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임 부장판사 역시 입증의 벽이 높은 직권남용죄 특성 덕분에 형사처벌을 피했지만 '위헌적 행위'라는 1심 판시는 꼬리표로 붙었다. 실제로 임 부장판사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된 날 참여연대는 "국회가 나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 재판 개입의 위헌성이 확인된 만큼 국회가 나서 사법농단에 간여한 현직 법관 탄핵에 즉각 나서야 한다"는 논평을 내 임 부장판사 탄핵을 촉구했다.
1심 선고 1년여 만에 가시화된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열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 등 의원들은 전날(1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법원은 임 부장판사 탄핵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김도읍·윤한홍 국민의힘 의원 측 질의에 이날 의견서를 보내 "탄핵 절차에 관한 권한은 국회와 헌재에 있고 대법원에서 이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4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다면 임 부장판사는 헌재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탄핵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모두 161명으로 국회 통과를 위한 의결 정족수(151명)를 이미 넘긴 상태인 만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은 무리 없이 가결될 것으로 점쳐진다.
헌재가 탄핵 여부를 심리해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임 부장판사는 파면된다. 만약 임 부장판사가 파면된다면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 선례가 생긴다. 최초의 법관 탄핵 가시화라는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는 법조계 시각은 둘로 나뉘었다.
법조계 일각은 '위헌 판시'가 나온 지 1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를 갖고 법관 탄핵을 서두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임 부장판사는 1심 선고 뒤 최근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으며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파면될 '직위'가 곧 사라지는 만큼 탄핵의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관을 포함한 법률이 정한 공무원의 탄핵을 규정한 헌법 제65조 4항은 '헌법상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고 규정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법학과 교수는 "임 부장판사는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아 이달 중 법관직에서 물러날 텐데 왜 이제야 탄핵안을 추진하는지 의아하다. 진정 사법농단을 단죄할 생각이었다면 진작 추진했어야 한다"며 "정치적 판단이 조금이라도 개입된 발의를 발판 삼아 탄핵 선례가 생긴다면 앞으로 법관을 억압할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심 재판부가 사실로 판단한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명백한 위헌적 행위로 뒤늦게라도 탄핵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는 "(임 부장판사의 행위는) 탄핵 수준의 책임을 물을 사안이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추진돼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산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도 "이번 탄핵안 추진을 기점으로 삼아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사법개혁을 밀어붙여서 사법농단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개인 이익에서 나아가 헌법 침해 행위를 심판하는 헌재 특성상 판단을 받아 볼 가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헌재는 헌법을 수호하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에 헌법을 침해한 사람을 심판하는 것 자체로 심판의 실익이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임 부장판사는 1일 법원내부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당사자이긴 하지만, 탄핵소추가 국회의 권능인 이상 국회법에 따른 사실조사가 선행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관계의 확인도 없이 1심 판결의 일부 문구만을 근거로 탄핵소추의 굴레를 씌우려 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넘어 전체 법관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법관 탄핵은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권능이 발동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제도적 무게에 걸맞는 신중한 심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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