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의 힘.. 초등생 편지에 우유 빨대 없앴다
작년 11월 매일유업에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 이 회사 제품에서 뜯어낸 빨대 200개와 삐뚤삐뚤 손으로 쓴 편지 29통이 쏟아졌다. 발신인은 ‘전남 영광 중앙초등학교 6학년 2반’. 편지엔 “빨대는 바다 생물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저는 앞으로 이 빨대가 붙어있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어린 학생들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매일유업은 자사 우유 제품 포장지에 붙여오던 빨대를 퇴출시켰다.
코로나 1년을 거치며 친환경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소비자들의 힘 덕분에 빨대 없는 음료, 플라스틱 라벨을 제거한 페트 음료, 스티로폼이 사라진 백화점 선물세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거리 두기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소비자들이 주문 배달로 스스로 얼마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발생시키는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윤리적 소비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휩쓴 2020년 생활 폐기물은 급증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보다 종이류는 24.8%, 플라스틱류는 18.9%, 스티로폼류는 14.4%를 더 버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급증이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환경을 원하는 소비자의 증가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액센츄어가 작년 8월 펴낸 보고서 ‘코로나19는 소비자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에 따르면, 글로벌 소비자 61%가 ‘코로나를 계기로 친환경 소비를 시작했다’고 응답했고, 그중 89%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지금 소비 패턴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소비자 친환경 요구에 맞추는 기업들
부쩍 커진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기업들에 당근인 동시에 채찍이다. 현대백화점은 작년 설 처음 종이 포장 선물세트를 선보인 뒤 인터넷 홈페이지 고객 게시판에 소비자들 칭찬 글이 쏟아졌다. 고객들의 칭찬에 힘을 얻는 현대백화점은 이번 설을 앞두고 스티로폼 대신 종이만으로 포장한 과일 선물세트를 작년 설 대비 2배로 늘린 2만세트 준비했다. 경영진들은 올해 안에 모든 선물용 과일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기로 했다. 롯데마트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5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코카콜라는 지난달 탄산수 제품에서 페트병 위를 감싸던 라벨 플라스틱을 없앴다. 덕분에 재활용이 쉬워졌다. 경쟁사인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생수에서 라벨을 없애자 소비자 칭찬이 쏟아졌던 게 자극이 됐다.
아예 포장 없이 ‘내용물만 파는’ 가게도 생겨났다.작년 6월 서울 망원동에 문을 연 ‘알맹상점’은 샴푸와 세제, 화장품 등을 파는 가게지만, 물건을 사려면 빈 용기를 직접 들고 가야 한다. 빈 통에 내용물을 담은 뒤 무게를 달아 결제하는 방식이다. 이마트·신세계백화점도 일부 매장에서 운영해온 ‘세제 리필센터’ 이용자가 급증하자 센터를 확대한다고 최근 밝혔다.
◇포장 없이 내용물만 파는 가게까지 등장
음식 배달 스마트폰 앱 ‘배달의민족(배민)’에서는 이용자들이 누적 1억2000만회 ‘일회용품 거부’ 버튼을 눌렀다. 배민에 등록한 식당 주인들도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자연 분해되는 식기 주문을 늘리고 있다.
온라인에서 산 물건이 배송올 때 생기는 쓰레기나 보냉제 때문에 주문은 인터넷으로 하고 매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가져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롯데온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의 상품을 온라인에서 주문 후 매장에서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스마트픽’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지난해 월평균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24.2% 증가했다. 마포구의 한 샌드위치집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밀폐 용기를 가져와서 담아가는 사람이 늘었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카레집은 아예 배달 주문을 받지 않고 개인 용기를 갖고 오는 사람에 한해서만 포장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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