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97] 슬픈 나라의 노래
라이먼과 마빈은 어밀리어의 귀중품을 몽땅 가져갔다. 카페의 테이블마다 무시무시한 욕을 새겨놓았고 사탕수수 한 통을 부엌 바닥에 온통 쏟아붓고 과일 잼이 든 병들을 다 깨뜨렸다. 그들은 증류기를 완전히 박살 내고 새로 산 커다란 응축기와 냉각기도 망가뜨린 뒤 오두막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파괴해버렸다.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쳤다. -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중에서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뒤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현 정부는 2017년,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며 탈핵 시대를 본격 선포했다. 태양광 사업으로 국토는 깎여나갔고 한국전력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많은 인재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국가의 미래 사업 기반이 무너졌다. 그런데 북한에 원전 건설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문서가 발견돼 정권의 이적 행위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1951년에 출간된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는 오갈 데 없던 꼽추 라이먼을 사랑한 어밀리어의 이야기다. 그녀는 라이먼을 집에 들이고 카페도 연다. 사람들은 저녁이면 들러 작은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라이먼은 어밀리어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전과자 마빈과 어울리게 되고 그녀의 인생 모두를 훔치고 부수고 불을 지른 뒤 달아난다. 어밀리어는 절망에 빠지고 그녀의 카페가 사라진 마을은 다시 황량하고 쓸쓸해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하면 그가 웃을까, 무엇을 주면 기뻐할까 고민한다. 주머니가 비면 빚을 내서라도 선물한다. 반면 과분한 애정을 받는 쪽은 감사는커녕 더 욕심내고 윽박지르고 빼앗으며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일부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있는 정권은 이적 행위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화만 내고 있다. 북한이 별별 욕설을 퍼부어도 침묵하는 그들, 자국민의 고통에는 끝없이 눈감는 정부는 주적에게 무엇을, 얼마나 더 주고 싶은 것일까? 일방적이고도 무한한 그들의 사랑이 ‘슬픈 나라의 노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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