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좌파 집권 너무 길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묻곤 했다. 프랑스 기업인, 학자를 만나면 ‘왜 프랑스의 1인당 GDP는 독일의 85% 수준에 그치는가’를 질문했다. 같은 맥락으로 ‘왜 프랑스는 땅 넓이가 절반도 안 되는 영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가’를 물었다.
단연 많이 들은 응답은 “미테랑 집권기가 너무 길었다”는 것이었다. 1981년 대선에서 승리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은 7년 임기를 연임해 1995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1958년 지금의 헌법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 집권한 좌파가 한풀이에 들어간 시절이었다.
신호탄은 대대적 기업 국유화였다. 미테랑 취임 직후 한꺼번에 민간 은행 36곳을 정부 소유로 바꿀 정도로 과격했다.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제도화해 노동 단체 권력을 키웠다. 2차 대전 이후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이 저물어 신발 끈을 다시 묶어야 할 시기에 사회주의 전환을 시도했다. 미래가 불안한 민간의 두뇌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미테랑은 복지 씀씀이를 대폭 늘렸다. 그가 권력을 잡은 14년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이 15%에서 28%로 점프했다. 이 비율이 오늘날 31%인 걸 보면 프랑스 복지는 미테랑 혼자 늘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1000조원 이상을 사회복지에 쏟아붓는 중이다.
미테랑은 ‘책상 위 이론’을 실행해 혼란을 부른 원조다. 그는 1983년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겠다며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갑자기 낮췄다. 장년층을 대거 퇴직시키고 젊은이들로 채우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몽상(夢想)이었다. 결국 은퇴자들에게 한꺼번에 천문학적 액수의 연금을 지급하느라 나라가 휘청거리는 역습을 당했다. 당시 생긴 ‘빚의 지옥’에 프랑스는 여전히 갇혀 있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국에서 좌파 집권기는 보통 우파보다 짧다. 프랑스는 현재 헌법 선포 이후 63년 중 19년,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76년 중 30년, 독일은 서독 정부 수립 이후 72년 중 20년이 좌파 통치기였다. 우파는 시장을 중심에 놓기에 사실 누가 집권해도 노선상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좌파는 주류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좌파가 집권하는 시기에 그들이 얼마나 헤집어놓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좌우된다.
오늘날 독일과 영국이 프랑스보다 형편이 나은 것은 좌파 총리가 등장하더라도 미테랑 집권기 같은 시장경제 암흑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노동계 반대를 억누르며 노동 개혁을 이뤄냈고, 영국은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슈뢰더·블레어보다는 미테랑에 가깝다. 문 대통령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20년은 집권하겠다고 하니 섬뜩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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