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버핏'의 시대[글로벌 이슈/하정민]

하정민 국제부 차장 2021. 2.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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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가 2018년 5월 뉴욕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기술주 거품, 헤지펀드 공매도 논쟁 등 최근 월가를 달구는 여러 사안에 대한 직설적이고 명쾌한 발언으로 젊은층 지지를 얻고 있다. 그의 행보를 두고 ‘밀레니얼 세대의 워런 버핏’이란 극찬과 ‘쇼맨십으로 개인투자자를 현혹시키는 대중영합주의자’란 혹평이 엇갈린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76년 스리랑카에서 태어났다. 내전을 피해 6세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왔지만 부친은 실직 후 술만 마셨다. 가정부인 모친이 생계를 책임졌고 변변한 침대가 없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주했다. AOL, 페이스북 등 주요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했고 IT 스타트업 전문 벤처캐피털을 차려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를 벌었다. 현 연인은 이탈리아 제약업체 상속녀 겸 모델이다.

‘흙수저 성공신화’ 그 자체인 억만장자 벤처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소셜캐피털 창업자의 일대기다. 미 자산운용사 리톨츠 매니지먼트의 조시 브라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팔리하피티야가 차세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창업자다. 그에게 버핏의 아우라가 있다”고 극찬했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성공을 거둔 팔리하피티야의 안목이 맥도널드, 질레트 등 ‘주식회사 미국’을 상징하는 전통주에 장기 투자해 한때 세계 최고 부호에도 올랐던 버핏 못지않다는 의미다. 팔리하피티야 또한 포천 인터뷰에서 “소셜캐피털을 내 세대의 버크셔해서웨이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팔리하피티야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쓰며 어떤 사안에도 지나칠 만큼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그는 최근 테슬라, 아마존 등 대형 기술주가 고평가됐다는 일각의 지적에 “음악이 나올 때는 춤을 춰야 한다”고 했다. 복잡한 숫자와 난해한 용어 대신 간단히 대세를 따르라고 권유했다. 또 쉴 새 없이 트윗을 날리며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말을 쏙쏙 골라 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를 지지하는 이유로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 가장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대 및 계층전쟁 양상으로 번진 게임스톱 사태 때도 개인투자자 편에 섰다. 개인투자자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온라인 게시판 ‘레딧’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어본 후 주식을 샀다며 “위험한 파생상품을 거래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야기한 월가 대형 금융사에는 막대한 구제금융이 투입됐지만 실직한 개인과 돈을 잃은 개인투자자는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았다”는 변을 곁들였다.

때로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2017년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150명의 남자가 이 세상을 움직인다. IT 기업가가 아닌 이들이 연줄과 흑막으로 모든 것을 좌우한다. 정치인 또한 이 150명의 꼭두각시일 뿐”이란 과격한 주장을 폈다. 특히 미 보수진영의 큰손으로 에너지기업 코흐인더스트리를 운영하는 코흐 형제가 대표적이라며 “이런 상업적 동물과 맞서려면 여러분도 돈을 벌되, 그들보다 나은 방식으로 돈을 벌라”고 독려했다. ‘F’자 비속어가 난무하는 연설이었지만 청중은 환호했다.

인기만큼 적도 많다. 유명 투자자 카슨 블록은 그를 ‘가짜 대중영합주의자’라고 혹평했다. 실제 팔리하피티야가 투자한 많은 회사는 우회 상장을 통한 차익 실현이 목적인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형태다. 개인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SPAC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양극화에 분노한 젊은층의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 한다는 의미다.

팔리하피티야보다 46년 먼저 태어난 버핏은 어떨까. 하원의원 부친을 둔 금수저로 세계적 부호까지 됐지만 고향인 미 중부 네브래스카의 65만 달러짜리 집에 계속 살고 있다.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즐겨 먹고 후줄근한 옷을 걸친다. 2004년 타계한 첫 부인과 현 부인 모두 일반인이다. 유행을 좇는 기술주 투자 대신 장기투자와 복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옛 생각을 떨치는 게 더 어렵다” 같은 투자 격언인지 인생 조언인지 모를 선문답 표현을 애용한다.

이를 감안할 때 월가 일각의 평가, 본인의 바람과 관계없이 팔리하피티야와 버핏의 공통점은 ‘부자’란 사실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점은 그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월가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이가 그의 논평을 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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