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이어리]뒷담화와 프라이버시

이동미 여행작가 2021. 2.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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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페이스북에 공유된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됐다. 유튜버는 부산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라이브로 방송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는데, 그사이 음식점 주인과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그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그 대화가 고스란히 녹화된다. 아주머니들은 유튜버의 짧은 치마 길이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큰 가슴, 팬티나 입은 거냐는 험담과 욕을 한다. 실시간으로 달린 댓글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유튜버는 식당 주인을 불러 왜 자신의 짧은 치마와 복장에 대해 뒷담화를 했는지, 맛있어서 찾아온 손님을 왜 욕하는지 물었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어쩔 줄을 모른 채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유튜버는 카드로 음식값을 계산하고 나온다. 영상을 본 나도 ‘남이야 짧은 치마를 입든, 팬티를 입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저렇게 욕을 할까’ 생각하며 그의 편을 들었다. 게다가 유튜버는 거의 먹지도 않은 음식값(10만원 정도)도 계산하고 나온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런 집에 무슨 계산까지 하고 나오냐, 천사가 따로 없다며 그를 응원하고, 뒷담화의 장본인인 아주머니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영상 설명을 듣던 독일인 친구가 말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 영상엔 우리가 따로따로 봐야 하는 몇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 당연히 남 욕을 한 건 잘못한 거지.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뒷담화를 한 것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남의 흉을 보며 살지 않나? 그리고 또 하나. 녹음이 되는 줄 모른 채 말한 내용을 공개하는 건 독일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내보낸 것이니까, 오히려 식당이 고소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야.”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는 독일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화였다. 단순하게 누구 편만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의 말이 녹화가 되는 줄 알았다면 당연히 뒷담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튜버의 말대로, 그가 계산을 하고 나간 후에 욕을 해도 했을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자신들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뒷담화를 한 것이다. 유튜버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녹화가 된 것이라면, 영상을 편집해 공개적으로 내보낼 때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이 영상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영상은 조회수가 160만이 넘었다. 1만5000개의 댓글을 단 사람들은 하나같이 식당 아주머니들을 욕했고, 식당의 이름도 노출시켰다. 저런 가게는 망해야 한다, 별점 테러를 하러 가자 등의 댓글이 수두룩했다. 자기들만 있는 줄 알고 나눈 뒷담화로 이 식당은 정말 망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내가 악의없이 한 뒷담화가 나도 모르게 세상에 알려져서 내 일을 잃고 사업을 잃는 것이 과연 당해도 싼 일일까? 물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므로 우리는 평소 말조심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살면서 뒷담화를 한다. 학교 친구에 대해서, 직장 상사에 대해서 혹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런 우리가 남이 한 뒷담화에 대해 몰려가 비난을 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위선자일 뿐이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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