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위기의 양극화, 방관은 독이다
[경향신문]
선진국들이 한 세기 이상에 걸쳐 이룬 경제발전을 한국은 갓 50여년에 이뤘다. 그런데 이런 발전만큼 소득분배도 빠르게 악화됐다. 선진국 중 1990년 이후 불평등도가 가장 빠르게 상승했다. 과거 가난했지만 다른 선진국보다 평등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부유해졌지만 매우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는 어려운 경제지표가 아니더라도 일상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과로사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노동자 2000여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이 정도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임금 양극화가 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 임금격차 등 노동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표가 지난 20여년간 OECD 회원국 최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 임금수준이 매우 낮고 대기업의 경우는 오히려 다른 선진국보다 국민소득 대비 더 높은 수준이다. 기업 규모별로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그만큼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은 이렇게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아직도 OECD 회원국 최하위 수준이고 그 평균 수준에 이르려면 국내총생산의 약 10%나 더 지출해야 한다. 복지전달 체계와 인력구조 역시 후진적이다. 더군다나 조세와 정부보조의 누진성도 낮아 충분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이처럼 양극화된 노동시장과 취약한 사회복지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재난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제 한국은행이 발간한 오삼일·이상아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봉쇄조치 시 근무가능지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근무 가능성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한국의 경우 이 지수 값이 EU 최하위국과 같은 수준으로 EU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봉쇄조치에 취약한 종사상 지위(임시·일용직)와 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특성과 양극화를 반영하는 결과다. 그만큼 봉쇄조치로 인한 소득분배 악화는 클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은 복지제도의 역할까지 감안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인이 소득재분배 악화로 체감하는 상처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재난위기로 인한 교육 단절이 교육 기회불평등을 장기적으로 더 심화시키고, 인적자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국제기구들이 경고한다. 기회불평등은 오래전부터 교육계에서 제기되어온 문제다. 경기도 교육연구원이 작년 8월 발표한 ‘코로나19 사태가 초·중·고 교육에 미친 영향에 대한 조사’에서, 소득 하위계층의 청소년들이 상위계층보다 2.5배의 점심식사 결손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사교육 의존도 역시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계층 간 격차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온라인수업 환경과 낡고 느린 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소득 하위계층에서 3배 많이 보고됐다. 상위계층에서 ‘요즘 행복하다고 느낀다’에 72%가 긍정적인 데 반해 하위계층에서는 61%가 부정적이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이런 재난이나 경제위기를 대비한 것이다.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는, 위기 발생 시 자동으로 취약계층의 물질적 지원을 늘리는 보호장치가 작동한다. 이런 자동안정화장치로도 부족한 위기에는 별도의 재난지원까지 동원한다. 작년 자동안정화와 재난지원에 따른 재정결손의 규모는 OECD 회원국 평균 국내총생산의 약 8.25% 수준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의 경우 15%를 넘었다. 한국은 4.18%로 최하위권이다. 그만큼 방역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큼 성공적이었던 뉴질랜드와 호주도 각각 9.14%와 12.66%로 평균을 넘는 적자를 보였다. 재정적자를 최소화했으니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잘한 것인가에 답하지 못한다면 허튼소리다.
재난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가장 낮았던 것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사회복지제도가 허술하여 경제적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역의 경제적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한 탓이다. 정부로서는 둘 다 창피한 일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아무리 방역에 성공해도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에 손상이 온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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