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하나를 알면 셋을 모르게 되는 앎
[경향신문]
“배우는 이의 소질과 처지에 맞추어 교육한다”는 지향은 한자권의 오랜 교육이념이었다. 일종의 ‘수요자 중심 맞춤형’ 교육으로,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어 ‘눈높이교육’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공자는 교육에서도 공자 이전과 이후가 나뉠 정도로 혁신을 일구어냈다. 교육을 지식인의 생계수단으로 도입하고, 눈높이교육을 교육의 기본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교육은 천자로 대표되는 왕실의 전유물이었고, 교육의 기본은 귀족 자제로 천하를 다스릴 고급 역량을 갖추게 하는 데 있었다.
공자는 전통을 깨고 조정과 관청 바깥에서 고급인재부터 하급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지식인을 길러냈다. 공자가 이런 교육을 최초로 선보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로 인해 ‘눈높이교육 기반 열린 교육’의 전통이 수립되었음은 분명하다. “예물을 갖추고 오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그의 고백이나 “가르침에는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는 선언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자가 아무나 다 가르치지는 않았다. 소질이나 출신 등은 따지지 않았지만, 그는 분발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묻지 않으면 일깨워주지 않았다. 공자는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한 모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남은 세 모퉁이를 돌이켜 보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로 갈무리했다. 네 모퉁이 중 하나를 알려주면 배우는 이는 남은 세 모퉁이가 있음을, 그런데 그것에 대해 자신이 무지함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 셋에 대해 알고자 하게 되며, 그렇게 남은 셋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전체를 알게 된다.
앎은 전체 속에서 부분을, 부분을 통해 전체를 바라볼 때 한결 미더워진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도 공자의 주문처럼 그 하나와 연관된 열 가지를 마저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하나를 온전히 알게 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를 알았을 때 전체를 이루는 나머지 열을 모르고 있음을 더불어 알아야 한다. 하나를 알게 되고 그것이 자기 욕망에 부합되면, 그것을 둘러싼 전모에 도통 관심이 없는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허망한 얘기지만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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