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노동자 줄사망 기업에 제동 걸까

조해영 2021. 2.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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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 수년간 산업재해(산재)로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면,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까.

국내 상장사 300여 곳에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중대한 산재가 발생하거나 사모펀드 문제가 있는 기업에 적극적인 단계의 주주제안을 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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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모펀드 문제기업에 주주제안 검토
경영계 "과도한 개입..연금사회주의 우려"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 수년간 산업재해(산재)로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면,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까.

국내 상장사 300여 곳에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중대한 산재가 발생하거나 사모펀드 문제가 있는 기업에 적극적인 단계의 주주제안을 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며 약속한 내용을 이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과도한 개입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1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조흥식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조 부위원장 뒤로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활동가 등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동계, 산재사망사고 기업 정조준…수탁위 논의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오는 9일 회의에서 ‘투자기업의 사외이사 선임 주주제안’ 안건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안건은 지난달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위원 발의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기금위에서 수탁위에서 발의 취지와 절차 등을 검토한 후 이달 기금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찬진 변호사 등 7명 위원이 공동발의한 주주제안 안건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문제가 있는 투자기업을 상대로 국민연금이 공익이사 선임과 관련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지적해 온 내용이기도 하다.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기업은 크게 두 가지 분야다. 포스코(005490)나 CJ대한통운(000120)처럼 수년간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과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주요 금융지주다.

장현술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은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가입자인데 가입자의 돈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기업에 투자하는 게 맞느냐”며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상의 문제로 꾸준히 산재가 일어나는 회사들에 대해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위에 안건을 대표발의한 이 변호사는 “스튜어드십 코드와 함께 발표한 이행 스케줄은 사외이사 후보군(풀)을 구성하고 추천하도록 돼 있었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며 “수탁위가 사외이사 풀을 정하면 기금운용본부가 주주제안 절차를 진행하도록 제안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800조 굴리는 국민연금…경영계 “연금사회주의”

이번에 논의되는 주주제안의 경우 △비공개 대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주주제안 △공개서한 발송 등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법 가운데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주주제안이 이뤄지면 과도한 개입에 따른 연금사회주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807조원 수준이다. 다수 기업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만큼 적극적인 형태의 주주권 행사가 본격화하면 국민연금 사정권을 벗어나는 기업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위원장을 맡는 등 논의 테이블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위치나 역할을 생각할 때 헤지펀드처럼 주주권행사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수탁위와 기금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면 정부와 노동계 입장이 더 강력하게 반영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논란이 첨예한 탓에 주주제안 안건이 9일 수탁위 논의 테이블에 오르더라도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국민연금이 개입할 수 있는 기준을 구체화하는 식의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위가 수탁위에 주주권행사 방안을 검토할 것을 주문한 만큼, 주주제안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에 이를 반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수탁위 관계자는 “9일 열리는 회의에서 주주제안 안건을 논의할지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음 기금위 일정 등을 반영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hych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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