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가속기, 과연 완공될 수 있을까?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2011년부터 1조5천억원 이상이 투입된 중이온가속기 건설사업이 최소 4년 이상의 일정 지연은 물론 당초 목표로 했던 성능으로 완공이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과기정통부의 종이온가속기 총괄점검단 위원장을 맡은 조무현 포항공대 명예교수는 2일 과기정통부 등이 주최한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 추진방향 토론회'에서 점검단의 총괄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업기간내 목표달성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특히 고에너지가속구간(SCL2)은 사업기간 예측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상태로는 언제 완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조 위원장은 "SCL2 구축일정이 이미 상당히 지연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태로서는 언제 완성이 가능할 지 확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면서 사업추진방향의 변경을 제안했다.
그는 점검단이 모든 기술적 이슈를 검토한 뒤 중이온가속기 완성에 필요한 16종의 주요장치에 대한 구축완료예상시점을 제시한 표에서도 SCL2의 경우 장치설치 및 성능확인 완료예상시기를 모두 빈 칸으로 표시했다.
중이온가속기 구성은 크게 저에너지가속구간(SCL3), 고에너지가속구간(SCL2),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저에너지가속장치에는 QWR 가속관 22기, HWR 가속관이 106기가 들어가는데 QWR은 지난해 9월 제작 및 설치가 완료됐으나 HWR 가속관은 15개월 지연된 올해 9월 완료 계획이다. 고에너지가속장치에는 SSR1(69기), SSR2(144기) 두 종류의 가속관이 들어가는데 현재까지 성능이 확보된 가속관 시제품은 SSR1은 1기, SSR2는 2기에 불과하다.
2019년 4월 재검토를 거쳐 수정 확정된 계획에 따르면 SCL3는 지난해 말 완성돼 올해 1월부터 빔실험을 시작하고, SCL2는 올해(2021년) 말까지 시운전을 통한 빔인출을 달성하며,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도 개발 및 시운전을 올해까지 끝낸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저에너지가속장치에 들어갈 가속관의 설치부터 계속 지연되면서 당초 일정대로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기돼 과기정통부와 IBS가 총괄점검단을 구성해 지난 6개월 동안 분야별 점검, 전문가 의견수렴, 해외자문 등을 거쳐 대안을 모색해 왔다.
◆"1단계 저에너지구간→2단계 고에너지구간 단계별로 구축하자"
이 날 조 위원장은 중이온가속기 사업추진방향 변경을 위한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 째 방안은 중이온가속기 구죽을 저에너지구간과 고에너지구간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중이온가속기 사업기간연장과 예산증액을 지금 단계에서 논의하지 말고, 기존의 사업기간과 예산 내에서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사업기간인 올해 말까지 저에너지구간을 중심으로 우선 구축해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2단계 사업은 저에너지구간 장치 운영과 병행해 고에너지가속장치 기술에 대한 선행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을 확보한 뒤에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조 위원장은 먼저 구축되는 저에너지구간 장치가 정상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운영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사업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추가연장, 예산증액 등 동일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선행 R&D를 수행하는 방안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조 위원장은 두 번 째로 저에너지구간과 고에너지구간 전체를 동시 구축하는 기존 사업범위를 유지하되 사업기간을 기존보다 4년 더 연장해 2025년을 목표시점으로 정하고 예산도 1천444억원을 증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술적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는 높지만,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예산 증액을 위한 적정성 재검토 등의 과정이 필요해 과기정통부와 기재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중이온가속기는 2019년 사업계획변경을 위해 한 차례 적정성 검토가 이뤄졌던 사안이어서 다시 적정성을 재검토해 예산증액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총괄점검단의 결론은 사업기간 연장 및 예산증액을 현 시점에서 추진하지 말고 일단 기존 일정 내에서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고 추후 2단계 사업을 위한 기술확보에 주력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2단계 사업이 가능할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같은 제안은 당초 목표를 포기하고 저에너지구간 만으로 반쪽짜리 중이온가속기를 일단 완공하자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이미 단계별 구축으로 전환하는 1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권면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도 이 날 '추진현황' 발표에서 고에너지구간 장치구축은 2023년 이후 가속관 초도품 단계까지 완벽하게 R&D를 마친 후에 제작에 들어가는 것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이온가속기 사업관리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이 날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중이온가속기의 당초 성능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에너지구간가속장치는 현재까지 요구성능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앞으로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예측할 수 조차 없다는 결론이다. 이에 따라 중이온가속기 사업주체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사업계획변경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 참에 R&D부터 먼저 수행해 기술에 자신이 있을 때 추진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 위원장은 이 날 발표에서 "자문을 수행한 해외전문가들도 돌발상황을 고려한 여유있는 일정 추가확보, 리스크 관리, 기술역량 및 경험축적 등을 권고했다"고 소개하면서 체계적인 사업관리 및 위험관리 강화를 위해 IBS 원장 직속으로 상설 관리기구를 설치하고 운영 및 사업단 개편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제안된 내용에 대한 불가피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김경렬 포항가속기연구소 연구위원은 "오늘 제안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총론적으로 사업관리는 이미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사업기간 연장에 대한 하드웨어적(물적요소)인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사업추진체계, 전문인력 등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까지 살펴봐야 하며 일정에만 집착하지 말고 사업관리 전략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이온가속기이용자협회장을 맡고 있는 홍병식 고려대 교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일정이 어떻게 되든 당초 목표했던 성능을 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2안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교수는 1단계 구축 후 운영을 하면서 2단계 구축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했다.
조용섭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저에너지구간의 올해 연말 완성 목표도 굉장히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음 단계의 고에너지구간 장치 개발단계에서는 사업단이 주도적으로 기술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SCL2의 기존 설계는 매우 오래된 것"이라며 "SCL3에서도 예상했던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듯이 사업단이 내부적으로 기술을 충분히 확보해 SCL2를 재설계하고 최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도 "지금의 형태로 가면 중이온가속기 사업은 앞으로 몇 년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첨언했다.
권면 단장은 "이용자들은 2안을 선호하시겠지만, 중이온가속기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다. 저에너지구간 장치를 완성하고 운영하면서 신뢰도를 높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저에너지구간을 올해 말까지 구축 완료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중이온가속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추진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핵심으로, 수소이온(양성자)은 물론 그보다 무거운 중(重)이온들을 초전도가속기로 가속해 엄청난 속도로 표적물질에 충돌시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들을 만들어내 그 성질을 연구·규명하기 위한 시설이다.
최상국기자 skchoi@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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