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쥐고 홀로서기.. 열아홉살, 나는 두번 버려졌습니다
만18세 되면 500만원 들고 떠나.. 자립 준비도 없이 사회로 내몰려
보육원 나서자마자 최하층으로.. 단칸 월세방서 8명이 살기도
작년 12월 28일 광주광역시 남구 한 건물 옥상에서 고교 2학년 양모(17)군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양군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부모에게 버려져 인근 보육원에서 쭉 지내왔다. 그러나 내년 2월이면 보육원을 떠나야 했다. 만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시설 보호가 끝나는 ‘보호 종료 아동’이 되기 때문이다.
남구 봉선동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끝자락 언덕에 있는 ‘형제의 집’이 양군이 17년 동안 지내온 보육원이었다. 이곳에서 양군이 다닌 학교까지는 직선거리 100m 남짓. 길을 따라 걸으면 10분도 채 안 걸린다. 지난달 14일 오후 찾아간 양군의 등·하굣길은 여느 학교 주변처럼 학원과 분식점, 교회가 있고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양군은 고등학교 입학 직후부터 우울·불안증세를 호소했다. 그해 여름부터는 극단적인 시도만 세 차례나 했다. 네 번째 시도에서 결국 생을 마감했다. 모두 보육원과 학교 사이 그 어딘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등·하굣길이 그에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육원 퇴소를 앞두고 홀로 사회에 나가야 하는 부담이 큰 데다 코로나 여파로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하자 많이 답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군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 “불안하다”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학교는 그런 양군을 ‘위기 학생’으로 지정하고 상담교사를 붙여 관리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다시피 하면서 상담도, 관리도 어려워졌다. 이 학교 교장은 “사회로 나가야 하는 부담감에 힘들었을 양군에게 학교마저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양군과 같은 보육시설 아동들은 만 18세가 되고 이듬해 2월 보호 기간이 종료돼 시설을 떠나야 한다. 보호 기간 종료로 보육시설을 떠나야 하는 아동은 매년 2500~2700여 명. 이들에게 정부가 쥐여주는 돈은 자립정착금 500만원과 3년 동안 매월 30만원씩 주는 자립수당이 사실상 전부다. 그것도 2019년에서야 시작됐다. 대부분이 무방비 상태에서 사회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500만원은 보증금으론 턱없이 부족하고, 서울 지역 방 한 칸짜리 원룸의 평균 월세가 50만원이 넘으니 자립수당은 월세를 내기에도 부족하다. 운 좋게 LH 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을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29% 정도만 혜택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10명 중 2~3명은 보호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된다.
특히 이들은 민법상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여서 보호자 없이는 곳곳에서 활동이 막힌다. 단순한 휴대폰 개통과 근로계약, 부동산 임대차계약, 교통사고 보험 처리 등도 혼자서 할 수 없다. 조윤환(42)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24년 전 보육원을 나온 나도 불과 2~3년 전 개인택시를 시작하면서 자립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열여덟 살짜리가 혼자서 살아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보육원을 나온 아이들이 의지하는 대상은 보육원 출신 선배와 동료들이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못하면 대부분 몇몇이 모여 단칸방에서 월세를 나눠내며 산다. 작년 2월 보육원을 나온 김모(19)군은 보육원 선배 4명이 있는 월세 방에 얹혀살다가 두 달 만에 쫓겨났다. 정착금 500만원도 이때 선배들과 어울리느라 다 써버렸다. 지금은 대학 진학도, 취업도 포기한 채 몸 의지할 곳을 찾는 중이다. 그는 “보증금 없는 월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지내며 알바 자리를 구하고 있다”며 “혼자 살기도 비좁은 월세 방에 8명까지 함께 사는 아이들도 있다. 보육원 생활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고 했다.
작년부터는 코로나 여파로 홀로서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모(21)씨는 보육원 퇴소 후 2년 내내 카페와 PC방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오다 작년 가을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최근엔 낮에는 배달, 밤엔 택배 상하차 일을 시작했다. 그는 “보육원만 나오면 자리 잡고 살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꿈도 희망도 깨지고 있다”면서 “앞날이 겁이 난다”고 했다.
고교시절 공부를 곧잘 했던 이모(19)양은 지난해 2월 보육원을 나오면서 바로 지방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학기 내내 생활비를 버느라 성적은 떨어졌고, 2학기엔 기숙사에 더 있을 수도 없어서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지금은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콜센터에서 일한다. 이양은 “고아로 태어난 운명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도 포기했다”면서 “보육원에서 살 때처럼 하루하루를 그냥 버티면서 살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김모(23)씨의 보육원 동기 한 명은 지난해 초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그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가려고 했더니 주민센터에서 ‘무연고자’여서 장례식 없이 화장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죽어서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생”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보호 종료 후 5년 이내에 있는 사후관리 대상자 1만2796명 가운데 3362명(26.2%)이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태였다.
정선욱 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은 “경제적 관념도 제대로 없는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보조금만 주는 것은 문제를 키우는 것”이라며 “심리적 자립 교육이 우선돼야 하고 아이들의 완전한 자립을 위해선 보호자라는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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