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여성들의 사회적 연대 확장입니다" ['유리천장' 뚫은 킴 응, 한국 야구에도 있다 (9)]

이용균 기자 2021. 2. 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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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희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

[경향신문]

황정희 제6대 여자야구연맹 회장은 “야구가 여성들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황 신임 회장은 출마 전까지 NC다이노스의 지원으로 창단한 W다이노스의 감독이었다. 황정희 회장 제공
야구하는 친구 둔 평범한 회사원
팀 만들고 감독 맡고 회장까지
야구의 매력은 ‘함께한다는 것’
신입에 “경조사 언니들이 챙길게”
학연·지연보다 더 센 ‘야연’ 강조
세계 최강 일본 꺾는 게 목표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연대는 굳고 단단하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남자들은 고교 졸업 기수를 기억하지만 여자들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를 잘 드러낸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하고 서열로 구분 짓는 연대는 끈끈하고 튼튼하다. 동문회와 향우회를 통해 외연을 확대한다.

황정희 한국여자야구연맹 신임 회장(46)은 여자야구의 목표와 존재 이유를 ‘여자들의 연대’에서 찾는다. 황 회장은 야구팀에 신입회원이 올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이제 여러분 경조사는 우리 언니들이 책임진다.” 야구는 종교와 맘카페로 제한되는 2021년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연대를 확장하는 장치다.

인터뷰가 이뤄진 지난달 27일 황 회장의 책상 위에 ‘원동기 등록증’이 놓였다. 황 회장은 “2종 소형 면허증을 아냐”고 묻더니 “우리나라 1%만 이 면허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125㏄ 이상 오토바이를 몰 수 있는 자격증이다. 막 베스파 1대를 들여놓은 참이었다.

2종 소형은 1%지만, 한국 여자야구는 0.1%도 되지 않는다. 여자야구 등록 팀은 전국에 46개, 등록 선수는 1000명에 모자란다. 삶 자체가 도전이었다. 고교 졸업식 날 2종 보통 면허를 땄고 직장생활 하면서 지게차 면허증을 시작으로 대형 면허, 2종 소형을 연달아 땄다. 지게차, 버스, 트레일러에 대형 오토바이도 몰 수 있다. 이제 한국여자야구연맹을 이끈다. 지난달 16일 투표에서 제6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에 당선됐다.

황 회장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SK네트웍스에서 전국 스피드메이트에 공급되는 워셔액, 부동액, 엔진오일 코팅제 등의 구매담당이다.

야구연맹회장 후보를 모시려던 여러 시도가 불발된 뒤 혼잣말로 “내가 해야 되나”라고 뱉은 게 시작이었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는 경선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공약도 없었다. 무엇보다 ‘황정희가 나간다고? 그럼 다음엔 내가 나가볼까?’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수·감독 출신 후보는 여러 팀들의 지지를 받았다. 황 회장은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많은 한국 여성들처럼 단체 구기 종목을 할 기회는 적었다. LG전자를 다닌 아버지의 영향에 친구들과 잠실구장 몇 번 간 게 전부인 “소프트한 야구팬”에 그쳤다. 2009년 “나보다 운동 못 할 것 같은” 친구가 ‘야구 하러 가야 해’라고 말한 게 운명이 됐다. “아, 여자들도 야구하는구나”라는 걸 알았고, 2004년 제4회 여자야구대회에서 대표팀이 일본에 0-53으로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XX’.

황 회장은 “일종의 애국심이었다. 내가 야구를 배워서 이기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야구하고, 조금이라도 알리면 저변이 넓어지고 그러면, 언젠가 일본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구 실력은 외야수와 주전자 사이”지만 야구팀 총무, 운영 능력은 발군이었다. 나인빅스, 글로리아, 글라디스 등을 거쳐서 2014년 새 팀을 만들었다.

“SK를 다니고 있으니까, SK와이번스에도 창단 지원 요청 제안서를 보냈다. 이름도 ‘와이걸스’라고 지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1군 진입 직후였던 NC다이노스가 지원을 수락하고 한 달 만에 유니폼을 만들어 보내줬다. 팀 이름은 W다이노스, 황 회장은 회장 출마 전까지 팀의 감독이었다.

야구의 매력은 ‘함께한다’는 점이다. 야구와 같은 단체 구기 종목은 한국 사회 여성들에게 부족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한다. 황 회장은 “그래서 신입회원이 들어올 때마다 ‘남자들 학연, 지연 따지지 않나. 이제 걱정마라. 여러분의 경조사에는 무조건 우리 언니들이 다 같이 간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캐치볼로 다져진, 학연·지연보다 더 센 ‘야연(野緣)’이다.

황 회장의 목표는 여자야구 활성화다. 황 회장은 “중요한 건 플레이의 완성도가 아니라 야구를 통한 성장의 과정”이라며 “타석에 섰을 때 팀 전체의 온전한 응원과 격려를 받는 경험, 다른 종목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2004년 0-53은, 지난 2016년 기장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0-6으로 좁혀졌다. 2019년 LG컵에서도 1-7이었다. 언젠가는 세계 최강 일본을 넘어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시리즈 끝>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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