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의 딜레마들

정민경 기자 2021. 2. 2. 22: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수첩] '인건비 프레임', '공정성 논란'에 갇힌 KBS 수신료 인상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여론은 점점 KBS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직원들에 대한 임금 문제였다. KBS가 “KBS 억대 연봉이 60%”라는 보수 야당 의원 주장에 반박했지만 “(억대 연봉이 직원의) 60%가 아니라 46%면 괜찮다는 것이냐”며 또다시 뭇매를 맞았다.

보수 언론과 야당이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KBS에는 억대 연봉자가 많아서 수신료를 올리면 안 된다'는, 즉 '인건비 프레임'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고통받는 현실에서 고임금 공영방송 직원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라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에서도 “수신료는 올려야 하지만 시점이 잘못됐다”는 말이 반복해 나온 이유다.

KBS가 자구 노력을 통해 최상위직급 폐지 등 조직을 슬림화하고, 보수 수준을 억제한다고 반박할수록 내부에는 '앞으로 연봉이 낮아지고 일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다는 점이다. KBS로선 딜레마다. KBS가 지난달 30일 “전반적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적정 수준의 임금 수준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이 같은 고민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인건비 프레임이 힘을 얻을수록 '선 구조조정 후 수신료 인상'이 뒤따른다. BBC와 같은 해외 공영방송처럼 수신료 인상과 함께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KBS의 한 관계자는 “BBC나 NHK 사례와 KBS를 등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 공영방송들은 1년 수신료가 20~30만원이고 인력 면에서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디어 전문가들 역시 공사 자체를 쪼개거나 재조정하는 등의 안이 아니라면 '상처 없는 인적 효율화'를 하기 어렵다고 본다.

언론 노동 관점에서도 구조조정의 칼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건 곧바로 노동법 위반에 직면할 수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해결책은 '독이 든 약'일 수 있다. 현 KBS 경영진은 과반노조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출신이 대다수다. 양승동 KBS 사장은 언론노조 KBS본부 전신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공동대표 출신이다. 사원들의 지지가 기반인 현 노사가 구조조정에 쉽게 합의했다가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

딜레마는 또 있다. 또 다른 KBS 수신료 인상 반대 논리로 '공정성 논란'이 있다. 수신료 인상을 설득하기 위해 공공의 영역인 뉴스와 시사를 늘리겠다는 약속도 하게 되는데 뉴스가 늘어날수록 공정성 시비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KBS 수신료 인상 반대' 여론은 'EBS 수신료 인상 찬성' 여론과 동조화한다. KBS 수신료 인상 기사에는 '억대 연봉', '공정하지 못한 방송' 등 반대 댓글들이 달리지만 EBS 수신료 인상 기사에는 '코로나19 때 교육방송 역할을 느꼈다'는 지지 댓글들과 함께 '펭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다. 차라리 KBS 수신료를 EBS에 주라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왜 나오는 걸까. EBS는 뉴스 비중이 적기 때문이지 싶다. 공정성 논란에 시달릴 일이 KBS보다 적다. 한 미디어 학자는 이를 '언더도그 효과'(경기나 싸움, 선거 따위에서 질 것 같은 사람이나 팀을 동정하는 현상)라고 말하기도 했다. KBS 수신료 가운데 고작 3%를 받는 EBS, 공정성 논란이 적은 EBS에 우호적 여론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학자는 “어떤 뉴스든지 그 비중을 높일 시 공정성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공정한 KBS 뉴스'라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뉴스를 시도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재난 저널리즘 강화는 물론, 지금까지 없던 뉴스, 전문적인 뉴스, 지역성을 강화한 24시 뉴스 등을 사례로 들었다. 공정을 표방하는 뉴스는 결국 기계적 중립에 빠진,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을 김빠진 뉴스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짜 공정한 뉴스'는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다.

결국 KBS는 “한국 사회에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한다. KBS가 현재 꺼낸 '수신료 인상안'으로 여론은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 선언적 의제가 필요함에도 마땅치 않다는 평가다. KBS에게만 '한국에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명제를 증명하게 놔둘 수는 없다. 방송 산업의 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하고 정치권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수신료 문제를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