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따라 춤추는 개미들..게임스톱, 비트코인 이어 銀까지?
게임스톱, 롤러코스터 장세 연출..은도 가격 변동
국내서도 셀트리온 급등락 연출..냉정한 투자 필요
"일론 머스크도 좌표 찍었습니다. 게임스톱 공매도 대전 참여합시다."
미국 비디오게임 기업 '게임스톱'에서 시작된 반(反) 공매도 운동이 전 세계로 번지면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유명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단어 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몇 개에 가격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모습이 주식시장과 현물시장, 가상자산 시장을 넘나들며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美 '게임스톱' 여파가 셀트리온까지
2일 코스피 시장에서 셀트리온은 전 거래일 대비 4.18%나 내린 35만5,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셀트리온 형제'들도 -4.38%(셀트리온헬스케어), -3.36%(셀트리온제약) 하락했으며, 에이치엘비 주가도 -1.76%를 기록했다.
이들 모두 전날 7~15% 급등한 종목들이다. 지난달 31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국내 주식 중 공매도 비중이 가장 높은 종목으로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를 꼽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셀트리온 공매도 잔고 금액은 지난달 28일 기준 2조598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종목 중 가장 많았고, 코스닥시장에서는 에이치엘비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한투연의 '전쟁선포'는 국내 투자자들을 자극했다. 내달 15일로 예정돼 있는 공매도 재개 조치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은 데다, 미국에서 연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게임스톱 전쟁'에 자극을 받은 투자자들까지 하루 만에 몰려든 것이다. 이날 셀트리온 거래량은 지난해 연말 코로나 치료제 허가 신청 소식이 전해졌던 날 이후 가장 많은 602만건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셀트리온 주가는 하루 만에 14.51%가 오르는 등 코스피 상승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기쁨은 하루도 채 가지 않았다. '반 공매도 운동'의 진원지인 게임스톱 주가가 전날 큰 폭으로 하락한 데다, 이전과 달리 장외 시장에서도 하락폭을 더했기 때문이다.
1일(현지시간) 게임스톱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0.77% 떨어진 225달러를 기록했고, 장외에선 15.77% 더 떨어졌다. 이 소식에 겁을 먹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셀트리온을 순매도하고 나서면서 이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스톱 주가 폭락 영향으로 이날 미국 증시가 일제히 올랐고, 떠났던 외국인이 대거 돌아오면서 코스피는 전날 대비 1.32% 오른 3,096.81에 장을 마쳤다.
'미지의 손가락'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개미들... 우리나라에 상륙할까
게임스톱에서 시작된 반 공매도 운동은 이제 '게임'처럼 다른 자산으로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銀)이다. CNBC에 따르면 은 현물 가격은 1일(현지시간) 오전 한때 10.4%나 오른 온스당 29.70달러를 기록해 2013년 2월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은 가격이 오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인터넷 게시물 때문이었다. 게임스톱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 지난달 말부터 일부 이용자들이 대형 은행과 공매도 세력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다음 목표로 은을 지목하고 나선 뒤 은 가격 변동이 심해진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 은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게시되기 시작한 이후 은 현물 가격이 3일 연속 상승해 15%가량 올랐으며, 은 선물 가격도 이틀간 10% 정도 상승했다.
비트코인도 반 공매도 세력의 대표주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지목'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상승과 하락폭을 키웠다. 머스크 CEO가 지난달 28일 트위터 계정 자기 소개란에 '#Bitcoin(비트코인)'이라는 한 단어를 쓴 직후 3만달러 수준이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한 시간 만에 3만8,000달러까지 솟구쳤다. 앞서 머스크 CEO가 게임스탑을 트위터에 언급한 직후엔 게임스톱 주가가 60%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제2의 게임스톱' 발생 어려워
그러나 국내 주식시장 특성상 우리나라에서는 제2의 게임스톱이 나오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 투기성 공매도 세력이 미국처럼 많지 않고, 1년 가까이 이어진 공매도 제한으로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개미들의 매수세만으로 게임스톱 같은 주가 폭등이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한 보고서에서 "국내 주식시장에는 투기적 공매도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셀트리온이나 에이치엘비 등은 유통 주식 수 대비 공매도 주식 수 비율이 5~10% 수준으로 낮아 이 비율이 100%를 넘었던 게임스톱과 비슷한 양상이 발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반 공매도 운동이라는 시류에 휩쓸려 따라가기보다는 상황을 냉철히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매수 운동의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미국 사례와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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