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는 WAR 3, 더는 분해서 울지 않겠다" [장터뷰]

장민석 기자 2021. 2. 2. 21: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시즌 LG 선발 한 축 맡는 스무 살 이민호
작년 10월 10일 NC전의 이민호. 당시 더블헤더 1차전에서 루친스키와 선발 대결을 펼친 그는 6이닝 무실점으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 LG 트윈스

LG 트윈스의 선발 투수 이민호(20)와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이민호는 작년 시즌의 모든 등판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잘한 기억보다 ‘누구에게 어떤 공을 던지다 어떻게 맞았다’는 아픈 기억이 더 자세했다. 실패를 거울삼아 성장하려는 젊은 투수의 모습에 흐뭇해졌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20시즌부터 LG 유니폼을 입은 이민호는 작년 16차례 선발, 4차례 구원으로 나서 4승4패, 평균자책점 3.69의 성적을 남겼다. 루키란 것을 감안하면 뛰어난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민호는 “아쉽다” “올해는 잘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체적으로 잘하긴 한 것 같은데 한 경기 한 경기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때 그 공 하나만 다르게 던졌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모든 경기에 후회가 남습니다.”

작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이민호. 그는 첫 가을 야구 무대에서 톡톡히 신고식을 치렀다. / LG 트윈스

◇ 두 번의 눈물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이민호의 표현대로 ‘혼이 빠지도록 털린’ 9월 7일 롯데전이다. 당시 이민호는 1.1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11개의 안타를 맞고 10실점 했다.

“혼자 너무 분해서 더그아웃 뒤로 가서 울었어요. 작년 제 모든 투구 영상을 다 가지고 있는데 롯데전은 구단 쪽에 달라고 안 했습니다.”

그래도 롯데전은 이민호에게 쓴 약이 됐다. 이후 다섯 차례 선발 등판을 모두 2자책점 이하로 막았다. 그리고 맞이한 ‘가을 야구’. 이민호는 두산과 벌인 준플레오프 1차전에 선발로 올랐다.

“막내로서 ‘사고 한 번 쳐보자’란 마음으로 마운드에 섰어요. 핑계일 수 있는데 그날이 제가 야구 시작하고 마운드에 오른 날 중 가장 추웠어요. 손이 얼어 불안했는데 첫 타자인 허경민 선배에게 초구에 몸에 맞는 공을 주고 말았죠. 지금도 그 장면이 계속 떠오를 정도로 아쉽습니다.”

허경민 다음 타자인 페르난데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이민호는 2~3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4회 박세혁에게 볼넷을 내준 뒤 김재호와 오재원에게 안타를 맞고 허경민에게 또다시 몸에 맞는 공을 내준 뒤 강판됐다.

“김재호 선배에게 맞은 공은 더 확실히 구석으로 뺏어야 했는데 몰렸어요. 교체되어 내려가는데 저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날은 뒤로 가서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작년 6월 11일 SK전의 이민호. 7이닝 1실점을 기록한 날이다. / LG 트윈스

◇ DH 1차전은 맡겨주세요

그렇다고 2020시즌이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민호는 작년 LG 팬들을 가장 설레게 한 선수 중 하나였다. 열아홉 살의 루키가 겁 없이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에 팬들은 신이 났다.

선발 데뷔전이었던 5월 21일 삼성전을 묻자 이민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날 이민호는 5.1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을 올렸다.

“라이온즈파크는 홈 플레이트 뒤에 투구 속도가 나와요. 그날 직구가 151km까지 나오고 슬라이더도 145km까지 찍히더라고요. 구속이 잘 나오니 머리 쓸 것도 없이 (유)강남이 형만 믿고 신나서 던졌어요.”

떠올리면 가장 기분 좋은 장면으로는 더블헤더 두 경기를 꼽았다. 이민호는 6월 11일 SK와 벌인 더블헤더 1차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10월 10일 NC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블헤더 1차전이 참 어렵더라고요. 제가 길게 던져야 불펜 소모가 적어 2차전을 대비할 수 있잖아요. 또 두 경기 다 뛰어야 하는 야수 형들을 생각해도 잘 던져야 하고요. 두 번 다 결과가 좋아 LG가 하루에 2승을 챙길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NC전은 상대가 루친스키라 더 의미 있었고요.”

이민호는 작년 NC를 상대로 다섯 차례 등판해 평균자책점 2.77로 잘 던졌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NC를 상대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고 했다.

이천 챔피언스파크의 이민호. 그는 올 시즌 선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 올 시즌의 과제들

2월 1일 스프링캠프 첫날 류지현 LG 감독은 켈리와 수아레즈, 임찬규, 정찬헌과 함께 이민호를 선발 투수로 못 박았다. 이민호는 “이제 상대도 저를 거의 파악했을 테니 머리를 써야 한다”고 했다.

“힘으로만 밀어붙여선 안 된다는 걸 작년에 잘 알았어요. 직구와 슬라이더는 힘이 빠져 80% 정도 되면 딱 맞기 좋은 구종이거든요. 커브의 비중을 좀 더 늘리려 해요. 변화구 연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타석당 투구 수부터 줄여야 한다. 이민호의 타석당 투구 수는 3.95로 리그에서 스무 번째로 많은 편이다. 그는 자신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민호의 지난 시즌 좌타자 상대 피OPS는 0.767, 우타자 피OPS는 0.578이었다. 좌타자 극복이 올 시즌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다.

이민호에게 올 시즌 목표를 물었다. 그가 승 수나 평균 자책점이 아닌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을 얘기했다.

“프로에 와서 WAR이란 데이터를 알게 됐고 유심히 보게 됐어요. 작년에 롯데전을 앞두고 WAR이 1.87까지 올라갔습니다. 내심 ‘잘해서 3까지 가보자’고 했죠. 그런데 롯데전 10실점 이후 WAR이 마이너스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즌 끝날 때까지 0.8까진 해보자고 했는데 그래도 1.77로 끝냈습니다.”

이민호는 2021시즌 ‘WAR 3’을 목표로 잡고 있다. 스탯티즈 기준으로 작년 WAR 3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13명이다. 두산 알칸타라가 8.29로 가장 높았고, 롯데 스트레일리가 7.51로 그 뒤를 따랐다. 국내 투수 1위는 4.61의 NC 구창모였다.

신인 중엔 KT 소형준이 2.35로 가장 높았다. 친구의 활약은 자극이 됐을까.

“솔직히 처음엔 의식이 됐는데 ‘남을 신경 쓰기 보다는 네 야구를 하라’는 형들의 얘기를 듣고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려고 했어요. 형준이도 잘 되고 저도 잘 되면 좋죠. 물론 맞대결이 펼쳐진다면 절대 질 생각은 없습니다.”

◇ 믿고 보는 이민호가 되겠다

이민호의 승부욕은 마운드 위의 표정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은 덥거나 추우면 그렇다고 했지만 승부에 불이 붙으면 곧잘 얼굴이 벌게진다. 오지환은 최근 인터뷰에서 가장 근성 있고 지기 싫어하는 팀 후배로 이민호를 꼽았다. 이민호는 “각 팀에 잘 치는 타자들이 나오면 힘 대 힘으로 붙어 보자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민호에게 ‘좋은 선발 투수’의 조건을 물었다. “안 아프고 이닝 길게 먹어주는 투수”란 답이 돌아왔다. 아직 젊지만 “나중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도 했다.

“제가 초2 때 LG와 롯데 경기를 처음 보고 야구에 빠졌어요. 그렇게 야구를 보다 보니 다음 날 선발이 누구냐에 따라 야구장을 갈지 안 갈지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선발이라고 하면 팬들이 기꺼이 티켓을 사는 그런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이민호는 2001년생이다. LG는 2002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마운드엔 정말 꼭 올라가 보고 싶어요. 선발이든 구원이든 상관 없이요.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정말 후회하지 않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