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교수들의 법률 의견서, 수천만원 받고 한쪽에 유리한 의견.."학문적 소신 진정성 의문"
[경향신문]
거액 두고 다투는 민사소송 등
로펌 의뢰 받고 20~30쪽 작성
건당 수천만원대의 보수 받아
거액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민사법정에 일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들이 한쪽 당사자에게 유리한 법률 의견서를 제출하고 있다.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20~30쪽짜리 의견서를 써주고 수천만원대 보수를 받고 있어 학자 윤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특히 이 교수들은 판사들의 스승이거나 대선배인 경우가 많아 의견서가 재판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외에서는 이런 의견서가 사실상 없거나 있어도 법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치고 있다.
2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의 의견서 제출은 민사소송이나 인허가권 등이 걸린 행정소송에 집중돼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A교수는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글로벌 기업을 대리하는 대형 로펌의 의뢰를 받아 의견서를 썼다. 이 의견서는 로펌을 통해 법원에 그대로 제출됐다. 의견서 내용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승소해 마땅하다는 것이고, 사건은 A교수 의견대로 원고의 청구가 모두 인용됐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의 의견서는 형식적으로는 로펌에 법률 조언을 제공하는 것처럼 쓰이지만 예외 없이 재판부에 제출된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대부분의 의견서 의뢰 시점이 사건 수임 이후이고 비용도 로펌이 아니라 소송 당사자가 낸다는 점에서 의견서가 로펌의 법률 자문에 응해서가 아니라 법정에 제출되기 위해 작성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이 재판에 내는 의견서를 거저 써주는 일은 거의 없다. 현직 B대법관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대형 로펌에 의견서를 써주고 건당 수천만원을 받았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자료에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로펌에 의견서 7건을 써주고 1억5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2014년 의견서는 법무법인 화우에 써주고 3000만원을 받았다. 이에 대해 B대법관은 앞서 “법률 의견서를 써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지만 나의 학문적 기준과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B대법관이 교수 시절 제출한 의견서 가운데 2012년 시민 4만여명이 제기한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이 있다. 금융기관들이 그동안 근저당 설정비를 소비자에게 물려왔는데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이 대규모 소송에 나선 사건이다.
그는 금융기관을 대리한 대형 로펌을 통해 “근저당권 설정 비용은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법원은 당시 B교수 의견서에 쓰인 대로 금융기관의 손을 들어줬다.
교수들이 의견서를 써주고 받는 돈은 사건에 따라 다르다. 소송에 걸린 금액이 적은 사건에서는 1000만~2000만원, 금액이 큰 사건에서는 3000만~5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금액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교수들이 부른다”고 했다. 다른 로펌 변호사는 “이름이 알려진 교수들이 주로 쓰기 때문에 부탁하는 쪽에서 흥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교수들은 대부분 개인 계좌로 보수를 받고, 더러는 자신이 속한 학회를 거쳐 받기도 한다.
특별한 이론을 받아내기보다
재판부에 영향 끼칠 의도 커
법관 출신·유명 교수에 의뢰
판사들, 대단한 영향 없다지만
미세한 차이로 승패 갈릴 땐
대선배의 입김을 무시 못해
전직 대법관이 의견서를 써서 하급심 재판부에 내기도 한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인 C 전 대법관은 2018년 서울고등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1심에서 피고가 사실상 패소한 사건의 항소심에서 피고 측을 위해 썼다. C 전 대법관은 의견서 마지막에서 “항소심 법원으로서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액을 제한하는 판결을 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라고 맺었다. 하지만 피고가 패소한 1심은 항소심에서도 유지됐고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있다.
C석좌교수는 2016년에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던 때 시작된 하급심 소송에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금융기관이 관리하던 개인정보가 유출돼 고객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그는 의견서에서 “개인정보주체들이 받는 귀찮음과 불쾌함 등을 법적으로 배상되어야 할 현실적인 손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금융기관 편을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무 교수나 의견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출신인 로펌 변호사는 “의견서에서 특별한 이론을 받아내려는 생각보다는 재판부에 무형의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크기 때문에 법관 출신이나 서울대 등 유명 대학 교수들이 많이 쓴다”고 했다. 대형 로펌들이 의견서를 쓸 교수들이 속한 학회를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평소에 관리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판사들은 의견서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직 법관은 “판사도 양측 변호사도 모두 법률가인데 법과대학 교수 의견서에 무슨 대단한 영향이 있겠느냐”고 했다. 현직 판사는 “의견서를 위해 얼마가 오가는지 우리도 직접, 간접으로 듣는다. 진의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했다. 항공사끼리 벌인 재판에서 서울대 교수 의견서가 나오자, 상대 로펌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의견서를 내겠다며 시간을 달라 했고, 재판부가 “시간 낭비, 돈 낭비 할 필요 없다. 아직 읽지 않았으니 양쪽 모두 의견서를 철회하면 어떠냐”고 해 의견서가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사들 생각은 다르다. 영향이 없다면 대형 로펌이 왜 의견서를 계속 내느냐는 것이다. 정말로 아무 영향이 없다면 거액을 들여 의견서를 내도록 소송 당사자에게 권유하는 것이 문제라고도 말한다. 중형 로펌 변호사는 “민사소송은 손톱만큼이라도 우세한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다. 은사이거나 대선배이기도 한 유명 법학자의 의견서는 판사에게 5%라도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러면 상대방은 패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견서 제출 자체 못 막는다면
해당 교수 법정 불러 검증하고
소송 상대방에 반박 기회 줘야
이에 따라 의견서를 내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해당 교수를 법정에 불러 주장을 검증하고 소송 상대방이 반박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한 교수가 법정에 불려 나온 사례는 거의 없다. 한 로펌 변호사는 “재판부가 교수를 법정에 불러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실을 진술할 증인도 잘 안 받아주는 마당에 의견서를 반박하겠다고 하면 서면으로 내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민사소송에 참여해 감정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도 거액의 보수를 받지만 법정에서 내용과 형식이 진실한지 검증을 받는다. 가령 건설물에 하자가 있다며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하자 여부와 정도를 감정하는 전문가나 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시장에 얼마나 피해를 주었는지 계산하는 계량경제학 전문가 등이 있다.
미국 워싱턴 로펌의 미국인 변호사는 “미국 법정에도 로스쿨 교수의 법률 의견서(expert report)가 자주 나오는데 비용을 받은 사실을 밝히고 상대방 변호사 반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판사들은 변호사 준비서면에 가까운 이런 법률 의견서는 설령 보수를 받지 않더라도 내지 않는 게 맞다고 말한다. 이들은 “분쟁이 진행 중인 법정은 교수들이 가르친 실무가들의 싸움터”라며 “학자는 사회를 살펴 예상되는 분쟁에 대비한 논문을 발표하거나 재판 이후에 종합적으로 비판하는 게 맞다”고 했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법관은 법정에서 조사를 거치지 않는 (교수의) 서면을 읽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 변호사법인 대표로 있으면서 3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교수가 거액을 받고 법률 의견서를 제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이 교수에게 의견서를 받아 법정에 제출한 것은 한 번인데 재판 준거법인 한국법에 관한 의견서라고 한다. “교수에게 30만엔(약 300만원)을 주고 의견서를 받았는데, 재판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 의견서를 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법률 의견서를 내는 것도 딱 한 번 봤다. 교수 의견서가 필요한 사건은 너무나 특수한 사안이라 변호사도 판사도 잘 모르고 문헌마저 적은 드문 경우뿐이다.” 한국 로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의 법률 의견서 관행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법률 지식이 없는 소송 당사자에게 의견서가 필요하다고 설득해, 변호사와 가까운 교수에게 부당한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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