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 PD 1주기' 언론노조에 쏠린 질문들

손가영 기자 2021. 2. 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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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토론회 "'무늬만 프리랜서' 어떻게 타파하나" 고민… 지난 1년, 현장 동요·정부 뒷북·국회 방관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2018년 언론노조와 지상파 3사 산별협약으로 약속한 비정규직 고용현황 조사 보고서, 왜 공개 안 되나요?”
“방송계 불안정 노동자들은 외주제작사에서 돌고 돕니다. 관련 사업 계획이나 문제의식이 있나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연대할 때 내부 반대 여론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나요?”
“고 이재학 PD 사건에 어떤 입장과 방향으로 연대할 건가요?”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1주기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서 언론노조에 방청객 질문이 쏠렸다. 방청객들은 비정규직 당사자의 문제 제기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 구조 개선을 위한 비정규직 노동 운동에 어떻게 연대할지 물었다. 언론노조는 최근 '전략조직국'을 설치해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장기 전략을 고심 중이다.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대책위)는 2일 오후 3시 서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고 이재학 PD 1주기 토론회 “방송-미디어 산업 '무늬만 프리랜서'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를 열었다.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한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가 방송현장 비정규직 남용 실태와 개선 방향을 발제했다. 김동현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 안명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이기범 언론노조 전략조직국장, 김성영 민주노총 충북본부 조직부장 등이 토론자로 나왔다.

▲2일 오후 3시 서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1주기 토론회가 열렸다. 유족 이대로씨가 와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토론회 말미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질문자 6명은 모두 언론노조에 질문했다. △왜 2010~2020년 비정규직 연대 활동이 없었는지 △비정규직과 이들의 사용자로 간주되기도 하는 언론노조 간 어떤 방향의 투쟁이 가능할지 △2018년 산별협약 때 약속한 '비정규직 고용현황' 보고서가 왜 공개되지 않는지 △외주제작사를 전전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은 무엇인지 △비정규직 연대 활동 시 내부 반발을 겪은 적은 없는지 등이다.

청주방송이 지난해 7월 언론노조·유족 등과 이룬 합의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는 “정규직 노조는 회사의 이행을 감시·견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언론노조와 산하 청주방송지부 모두 이재학 PD 사건에 어떤 방향성으로 연대하며 사건 해결을 위한 지난 1년 싸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물었다.

이기범 전략조직국장은 “지난해 10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언론 전반에 걸친 비정규 노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실태조사와 사업 방향·체계를 의결했다”며 “체계 마련을 위해 노조 사무처 내 연구반을 구성했다. 비정규직 실태 분석, 요구 사항 정리, 제도적 어려움 및 대책 검토, 장기적 활동 계획 수립 등이 목표”라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이를 위해 조직쟁의실에 '전략조직국'을 신설해 담당자를 지정했다. 지난 1월엔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현황 조사를 위해 방법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매체별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례를 조사하고, 비정규직 노조를 늘려나가기 위한 청사진도 세울 예정이다.

이 국장은 또 “청주방송 노조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걸 알지만 이후 이행 과정에서 노사 TF팀에 참여하고 처우 개선이 필요한 직군의 의견을 전달하면서 노력을 다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언론노조가 사용자처럼 비쳐진다는 질문은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관성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이를 깨고 해소해 나가야 할 문제다. 언론노조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비정규직 남용의 진짜 책임자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특히 회사가 부추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노노 갈등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 노무사는 “노동자 갈라치기는 청주방송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포착할 수 있었다. 사용자는 '파이 나누기'로 이를 이끈다”며 “호봉직, 일반직, 연봉직 등 다양한 형태로 고용 구조, 신분 구조를 만든다. 직원들이 뭉치기 어렵게 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김성영 조직국장은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파업할 때 '자동차 잘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런데 방송노동자들이 파업할 땐 '좋은 보도 해달라'고 한다. 언론 노동의 특별함”이라며 “그러나 방송사엔 '언론인'만 있는 게 아니라 방송 스태프, 차량 기사 등 다양한 노동자가 있다. 언론인 노조가 노조답게 노동 측면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명희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위원, 김동현 변호사, 이기범 언론노조 전략조직국장, 김성영 민주노총 충북본부 조직부장.
▲김유경 노무사가 발제 자료로 쓴 프레젠테이션 갈무리.

노동부 떠밀려 근로감독, 최선의 수단은 '상시감독'

토론회에선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국회가 늑장 대응으로 방관한다는 질타가 나왔다. 고용노동부 청주고용노동지청은 지난해 12월21일 청주방송을 근로감독했다. 이 PD가 사망한 지 10개월 후다.

김 노무사는 “고인의 죽음 후 국회에서 여러 번 고용노동부에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한 끝에 뒤늦게 사흘간의 근로감독을 실시했다”며 “노동부는 사회적 관심사가 된 사안에서 방송사들에 대한 상시 근로감독을 통해 노동권 침해 사례를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에 “방송 비정규직들이 노동관계법의 직접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토록 하고, 형식으로 꾸민 위탁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일하는 노동관계 실질을 담은 조항이 포함됐는지 수시 점검이 요구된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방송사업자 재허가 조건으로 비정규직 인력 현황 및 근로 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김 노무사는 환영할 조치라면서도 “경험적으로 방송사들이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 통계치를 제출한다. 이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국회 과제로 '방송노동자' 개념 법제화를 요구했다.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2조는 영화 근로자를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라고 정의했다. 실제 영화산업노조는 이 조항에 근거해 근로계약서 작성 등 영화 스태프 노동 환경을 의미 있게 개선 시켜왔다.

김동현 변호사는 “방송법상 방송노동자 개념 정의는 방송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며 “방송은 영화, 대중예술문화보다 강한 공적 책무와 공익 달성을 요구하고 이는 방송법 여러 규정에도 반영됐다. 공익 달성은 방송노동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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