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잠긴 뒷문 통해 배송했다가 법정에 서게 된 택배노동자

전현진 기자 2021. 2. 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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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배송 중인 택배노동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게 주인, 침입 혐의 신고
“잃어버릴까봐” 사과했지만
합의금 300만원 요구해
“벌금 20만원은 너무 적다”
담당 검사, 정식 재판 청구

잠겨 있지 않은 미용실 뒷문으로 들어가 택배상자를 두고 온 택배기사의 행위는 범죄일까.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문한 상품을 배송한 택배기사로 2020년 8월 피해자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시정(施錠·자물쇠를 채워 문을 잠금)되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 침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 심리로 2일 열린 택배기사 하모씨의 첫 재판에서 검사가 읽은 기소 요지는 한 문장이었다.

하씨는 당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미용실에 배송을 갔다. 신축건물 1층에 미용실이 있었다. 미용실 앞문 앞에 택배상자를 두려면 현관 출입문을 통과해야 했다.

현관 출입문은 도어록으로 잠겨 있었고 고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부 주차장으로 통하는 미용실 뒷문이 보였다. 뒷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하씨는 뒷문을 열고 네다섯 걸음을 걸어 미용실 안에 물건을 두고 나왔다.

다른 배송지로 이동하던 중 미용실 주인의 전화가 왔다. 주인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미용실 앞문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돌아간 하씨는 뒷문을 통해 물건을 가지고 나온 후 현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미용실 앞문 앞에 물건을 두고 왔다. 몇 시간 뒤 하씨는 건조물 침입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주인이 하씨를 신고했기 때문이다.

하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새로 연 가게에 발자국이 찍혀서 매우 기분이 나빴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요구했지만 주인은 들어주지 않았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후 피해자는 합의금 300만원을 요구했다. 하씨는 합의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벌금 20만원의 약식명령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벌금 50만원 약식명령을 청구했던 검사가 “벌금이 너무 적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하씨가 이날 피고인석에 서게 된 이유이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죄송하다. 이 사건 전에 택배 물건을 여러 번 분실해 물어준 적이 있어 최대한 안전하게 해야겠다는 강박이 있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판결 선고는 오는 9일 나온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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