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북 원전' 의혹..남는 건 '왜 만들었나, 왜 지웠나'
[경향신문]
월성 1호기 감사 직전 문건 삭제 의문…‘경위’ 파악 관건
야당 ‘청와대 등 상부 지시’ 의심…청 “재판에서 다뤄야”
산업통상자원부가 ‘북한 원전 추진’ 의혹을 불러일으킨 해당 문건을 공개했지만 야당은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청와대 지시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 아니냐며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넸다는 이동식저장장치(USB) 내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 속에 북핵 문제 해결 없이 정부 단독으로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극비 추진’ ‘이적행위’ 등 야당의 의혹 공세는 힘을 잃는 모습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사실관계부터 틀렸다며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했다”는 문서를 왜 삭제했는지 등은 의문으로 남는다.
■ 북한 원전 계획 극비 추진?
최대 관심은 USB 내용이다. USB에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포함됐는데, 국민의힘은 여기에 대북 원전 계획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결국 청와대 지시로 산업부가 원전 계획을 극비리에 검토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여권 인사들은 “원전의 ‘원’자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통일부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서 에너지 관련 경협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고, 화력·수력 등 재래식 발전이나 풍력·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언급만 담겼다는 것이다.
북한 원전 건설이 요원해 보이는 여러 여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도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을 더한다.
남측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 미국 등 국제사회와 사전 협의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는 것이다. 산업부 문건 내용도 에너지 정책 차원에서만 접근했을 뿐, 비핵화 협상이나 대북 제재 등 현실적 여건에 대한 고려를 결여하고 있어 구체적 추진계획이라고 보기에는 조악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 왜 그 시점에, 문서를 만들었나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 v1.1’ 문서 생산 시점은 2018년 5월14일로 추정된다.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4월27일)과 2차 남북정상회담(5월26일) 사이다. 이에 야당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상부 지시’에 따라 산업부가 대북 원전 추진 방안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어떤 실무 공무원이 상부 지시와 보고 없이 국가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마무리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었던 당시는 정부와 민간 영역에서 경쟁적으로 남북협력 ‘아이템’ 찾기에 매달렸던 때다. 비핵화 협상 타결로 대북 제재 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뀔 상황을 가정해 ‘과감하고 전면적인’ 경제협력 방안도 거론됐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산업부도 남북 에너지 협력의 한 방안으로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험에 근거해 원전 건설을 검토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산업부 내부 검토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정식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청와대에는 보고도, 회의 안건으로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통일부도 판문점선언 이행추진위원회에서 관계부처 아이디어를 취합하기는 했지만, “산업부가 제출한 자료에는 원전 관련 사항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 ‘도돌이표’ 궁금증, 왜 문서 삭제
다만 산업부가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감사를 앞두고 원전 관련 자료 530건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북한 원전 관련 문건까지 삭제한 배경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를 두고 야당은 대북 원전 추진 계획 공개를 우려한 까닭에 청와대 등 상부 지시로 삭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데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재판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공무원의 문서 삭제 경위는 결국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나 가려질 것으로 보여 그때까지 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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