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에만 의존해 불공정 심화..'단체기합' 방식 바꿔야"
[경향신문]
“자영업자 주머니 화수분 아냐” 사회적 비용 파악 주문
다양한 집단·계층 목소리 반영 ‘지속 가능 대책’ 한목소리
정부가 전문가 의견 수렴을 시작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에 본격 착수했다. 현행 5단계 거리 두기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 업종 간 형평성 문제와 특정 집단에 집중된 피해 등을 개선하고, 방역 실효성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2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 대부분은 확진자 수와 국민 이동량 등에 국한된 방역수칙과 거리 두기 단계 조정이 ‘지속 가능한 방역체계’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면 거리 두기를 강화하고, 확진자 수가 줄면 다시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시민 기본권 보장에 미흡”
대표적인 사회적 비용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된 피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껏 우리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은 외면하고 보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 두기 비용을 과소평가해왔다”며 “그들의 경제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원칙으로 받아들여야 거리 두기 비용을 제대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정부 명령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 호주머니는 화수분인가”라며 “거리 두기는 강력히 하면서 보상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거리 두기에만 의존하는 방역정책으로는 사회 불평등 심화가 불가피하며, 다양한 집단과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결정을 해야 상시적인 감염병 대응이 가능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거리 두기 강화로 ‘감염 차단’이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사회적 약자 등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각종 복지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사회적 고립을 겪는 노인·장애인, 최소한의 구호마저 중단돼 배고픔에 시달리는 노숙인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권리 후퇴가 방치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간 방역 대응은 ‘안정적 직장을 누리는 중장년 남성’ 위주의 의견이 반영된 과정이었다”며 “돌봄 문제가 한순간에 여성·가족의 책임으로 회귀해 버렸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 조치에 따른 등교수업 중단, 보육시설 제한 운영 및 폐쇄 등 공적 영역의 돌봄 기능이 대폭 축소되면서 그 부담이 여성들에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 9일에는 자영업자 등과 논의
정교하지 못한 현행 체계의 문제점, 정책 목표와 대상의 불일치도 한계로 거론됐다. 대부분의 집단감염은 회사·종교시설이나 병원·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데 거리 두기는 식당·카페·체육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는 “소수 시설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는데 방역을 잘 지킨 다수의 선량한 집단이 피해를 보는 거리 두기는 ‘단체기합’일 뿐”이라고 말했다. 권순만 교수도 공공도서관 폐쇄를 예로 들며 “마스크를 쓰고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도서관을 왜 먼저 닫아야 하는가”라며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고 비판했다.
방역당국은 향후 거리 두기 체계는 특정 집단의 피해를 사회 전체로 분산하고, 정밀하게 세분화한 방역수칙을 수립해 위험도에 따라 관리 수준을 달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특정 시설 집합금지·영업금지보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처럼 국민이 피해를 보더라도 시설 영업권을 보장하는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경청할 것”이라며 “규제와 감시보다는 자율과 참여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수본은 오는 9일에는 자영업·소상공인 관계자들과 함께 다중이용시설 방역수칙 적용에 대한 방안을 논의한다. 방역당국은 관계 부처와 함께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 업종의 협회·단체 등과 별도 간담회를 진행하며 현장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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