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60관왕 영화 미나리
[경향신문]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Minari)>가 주목받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최근 뉴멕시코 비평가협회와 미들버그 영화제에서 연기 앙상블상을 받는 등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무려 60관왕에 올랐다. 오는 4월25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여러 부문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할머니역을 맡아 20개 영화제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에 걸맞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나리>는 배우 브래드 피트의 회사인 플랜B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하지만 한국계 감독과 한국 배우,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했으며, 대부분의 대사 또한 우리말이라는 점에서 한국영화계의 역량이 깊이 배어 있다. 아칸소주 시골 마을에서 자란 한국계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영화 제목인 <미나리>는 바로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그 미나리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고 정 감독은 말한다.
정 감독은 르완다 내전 후유증을 다룬 데뷔작 <문유랑가보>로 2007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을 때 가진 ‘씨네21’ 인터뷰에서 “진짜 미국인이라고 느껴보지 못했다. 한국에 가면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국인이라고도 느끼지 못했다.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은 오랫동안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감독의 오랜 정체성 고민이 이번 영화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한국영화계에 쏟아지는 관심과 호평이 반갑다. 임권택 감독 등 거장들의 일부 영화를 제외한 대다수 영화의 만듦새가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던 1990년대 중반 이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987년 미국 직배영화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영화계는 “영화산업이 망할 것”이라며 우려했고, 한 감독은 직배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 뱀을 풀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랬던 한국영화가 이제 미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역량있는 감독과 배우, 제작 시스템까지 갖춘 만큼 미래가 더 기대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극장가 불황이 영화계 전반의 침체로 번질까 걱정된다.
이용욱 논설위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