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개편 두고 전문가 갑론을박.."일률적 집합금지는 단체기합 "
"거리두기 강도 너무 높고 시설 제한 근거 부족"
"확진자 수 감소 노력 불가피..충분한 보상해야"
"생존 필수 시설까지 문닫아 취약계층 기본권 침해"
정부가 설 연휴 뒤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 개편을 예고한 가운데, 거리두기 정책의 목표와 수위, 방식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최소화에 무게를 싣기보다 사회·경제적 피해를 균형 있게 고려해 거리두기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가 하면, 유행 시기 선제적인 고강도 거리두기로 피해 발생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거리두기로 인한 아동, 노인, 장애인, 비정규직, 노숙인 등 취약계층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2일 서울 중구 엘더블유(LW)컨벤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 개편을 위한 1차 토론회’를 열었다. 최근 3차 유행에서의 거리두기 정책을 평가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모아 설 연휴 뒤 거리두기 체계 개편에 반영하기 위한 자리다. 토론회에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주제 발표를 했고,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 나백수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박주영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부)가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확진자 수 감소에 ‘올인’(전부 집중)하지 말고 사회경제적 측면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은 거리두기 강도가 국외 주요국에 견줘 지나치게 높고, 거리두기로 인한 피해는 소상공인 등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발생한 934건의 집단감염을 분석해보니 회사가 20%, 가족·지인모임 18%, 종교시설 15%, 다중이용시설 13%, 의료기관 10%, 요양복지시설 8%, 교육시설 7% 순이었다고 밝히며 “거리두기 규제가 집중된 다중이용시설보다, 실제 집단감염이 많이 생긴 회사 방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는 어떤 시설이 방역수칙을 안 지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그 유형의 시설을 전부 고위험시설로 규정하고 문을 닫게 하고 있는데 이는 단체기합 방식”이라며 “강도 높은 거리두기만이 능사가 아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거리두기를 하되, 대신 늘어날 환자를 감당할 충분한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거리두기를 통한 환자수 감소 노력은 여전히 코로나19 대응의 핵심이라는 이견도 제시됐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어느정도의 지역사회 환자 발생은 괜찮다는 인식은 부적절하다”며 “지역사회 환자가 늘면 결국 요양병원 등 고위험시설로 전파가 이뤄져 사망자가 늘고 병상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리두기로 인한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사회의 고통 분담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유행 초기에 거리두기를 강하게 하고 빨리 끝내는 것이 국민 피로도를 낮추고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여가활동을 하는 다중이용시설이 아닌 당사자들에겐 생존필수시설인 사회복지시설이 운영금지되면 노숙인에겐 기아 문제가, 노인에게는 사회적 고립 문제가 누적되고, 중증 장애인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워지는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며 “코로나19와 상당 기간 같이 살아야 하는 만큼, 방역정책 결정 과정에 사회적 취약계층이 참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수본은 오는 9일 2차 토론회를 열어 거리두기 단계별 시설 방역수칙을 두고 자영업자, 경제학자 등과 토론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전파 차단을 위한 방역수칙을 ‘시설’이 ‘행위’에 적용하는 쪽으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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