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막스웰 "절친 즐라탄, 약속은 꼭 자기 집 근처에서.."

조형애 2021. 2. 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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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Felipe Rocha, 에디터=조형애]

막스웰은 화려한 선수 커리어를 보냈다. 37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절친’이기도 하다. 다니 알베스가 최다 우승 기록을 깼다고? 에이, 그는 개의치 않는다.


2017년 은퇴하기 직전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가 되었다. 우승을 37번이나 했다. 기분이 어땠나?

선수 시절엔 그 기록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한 적 없다. 은퇴하고 돌아보니 좋더라. 축구를 통해 경험한 모든 일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여러 위대한 팀의 일원이 된다는 건 확실히 트로피 보다 더 중요하다. 빅클럽들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뛴 것에 감사하다.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 그것이다. 성공적인 구단들에서, 아주 재능 있는 선수들과 함께 한 건 특권이었다. 그들 때문에 난 우승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우승이 두드러지나?

두 개를 언급하고 싶다. 바로 유럽에서 들어 올린 첫 트로피와 마지막 트로피다. 첫 번째 건 아약스의 에레디시비 우승 트로피였다. 내 데뷔 시즌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한 축하 행사는 믿을 수 없는 정도였다. 난 꿈 많은 어린 소년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그보다 나은 출발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내 마지막 트로피는 쿠프드프랑스(FA컵)였는데, 결승전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였어서 그 자체로 이미 내겐 특별했다. 내 축구 여정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티아고 실바가 파리생제르맹 주장이었는데, 그가 내게 트로피를 들게 하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이다.

많은 팀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그 일원으로 충분히 공을 인정받고 있나?

잘 모르겠다.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가 많은 공을 인정받았는지, 아닌지 반문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축구를 한 이유가 아니었다. 난 좋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고, 내가 뛴 클럽에서 늘 많은 인정을 받았다. 팀 동료들, 지도자들, 그리고 팬들은 내게 많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는 어떻게 ‘절친’이 된 건가?

운명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존중, 그리고 공감이었다. 그는 정말 환상적이다. 충실한 사람이기도 하다. 아약스에서 만났을 때, 우린 둘 다 정말 어렸다. 즐라탄이 아약스에 왔을 때, 난 이미 그곳에 있었다. 그는 내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몇 주 동안 우리 집에 있었다. 우린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고 있었고, 그렇게 우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선 운명이었다. 우린 11년 동안 함께 뛰었다. 지금은 평생 갈 친구다. 심지어는 우리 아이들도 서로 친구다.


즐라탄과 4개 클럽에서 함께 뛰었다. 그가 당신을 따라 이적한 건가?

우연의 일치 중 하나다. 아약스에는 내가 먼저 합류했는데, 처음부터 서로를 알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유벤투스로 이적했고, 난 인테르와 계약을 했다. 그런데 유벤투스가 세리에B로 강등되면서, 그가 이탈리아 빅클럽들의 타깃이 되었다. 인테르 사람들은 내게 ‘즐라탄은 어떤 사람인가’하고 묻더라.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게 아마도 가장 큰 우연일 거다. 난 인테르가 그를 놔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난 이브라의 꿈이 바르사 입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바르사 입단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파리생제르맹에서의 재회였다. 즐라탄은 팀의 프로젝트를 잘 몰랐고, 그래서 내가 내부 정보를 주었다. PSG에서 뛸 때 그는 아침 일찍 전화를 해왔다. 만나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식사할 카페가 우리 집 근처에 없었다!

즐라탄이 바르사에서 왜 잘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좋은 질문이다. 즐라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능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서도 특별한 선수였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바대로 되진 않았다. 시작은 아주 좋았다. 득점도 올렸는데, 시즌 후반에 많이 뛰질 못했다. 여러 가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사건들이 그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쳤다. 우린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친정팀인 인테르에 졌다. 그런 패배는 늘 이슈가 된다. 난 아직도 그 경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우리에겐 큰 좌절을 주는 일이었다. 그날 밤 즐라탄과 펩 과르디올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펩이 그 후에 즐라탄을 경기에 많이 출전시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나 특별했나?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그건 인생을 바꾸는 기회다. 바르사는 환상적인 클럽이고, 그 선수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능 있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다. 모든 선수들은 각자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고, ‘케미’는 완벽했다. 그 기억은 늘 가슴속에 특별하게 간직할 거다. 난 펩을 위해 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최근 다니 알베스와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가 말하더라. ‘펩 밑에서 한 번 뛰게 되면, 지도자가 되는 법도 알게 된다’고. 그가 옳다.

과르디올라가가 무엇을 그리 잘 한 건가?

난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능력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팀 동료들의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해하기 쉬웠고, 그런 움직임이 갑자기 자연스러워졌다. 경기 후에 그의 사무실에서 함께 미팅을 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는 선수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길 원했고, 선수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말해주었다. 그가 설명하는 능력은 믿을 수 없다. ‘마스터클래스’다.


리오넬 메시도 함께 뛰었는데…

레오의 퍼스트 터치는 날 항상 놀라게 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쉽게 컨트롤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천재다.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해냈다. 매일 그런 광경을 본다고 생생해 보라. 훈련에서 경기 때보다 더 좋은 장면을 보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겸손하다.

PSG에서 보낸 시간은 즐거웠나?

아마도 PSG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즐거웠을 거다. 아약스, 인테르, 바르사는 이미 우승을 경험한 클럽들이었지만, 내가 갔을 때 PSG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 프로젝트 초기에 내가 참여하게 된 건 행운이었다. 그곳에서 5년 반 동안 뛰었다. 그 후 2년 동안은 코디네이터로 있었다. 지금은 브라질에서 PSG 엠버서더를 하고 있다.

브라질 대표팀으론 10경기를 뛴 게 전부다. 왜인가?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싶었던 건 분명하지만, 내가 가졌던 모든 기회에 감사한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내 이름이 아주 브라질스럽지도 않고, 내 스타일도 브라질 선수 같지가 않아서? 그렇지 않나?(웃음)

2018년, 다니 알베스가 트로피 37개를 차지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내가 거기 있었다. 그가 PSG에서 뛰고 있을 때 난 디렉터였다. 경기 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가 “보스, 미안해요”라고 놀리더라. 우린 많이 웃었다. 난 그가 기록을 깬 것이 아주 기뻤다. 알베스는 멋진 사나이다. 훌륭한 축구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우승을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는 그 이후로도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PSG가 킬리안 음바페, 네이마르를 오랫동안 붙들 수 있을까?

둘은 세계 최고의 선수다. 다른 팀들이 그들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난 PSG가 둘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PSG에서 행복하고, 클럽에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PSG의 프로젝트는 위대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지, 파는 게 아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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