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만으로 국민들 행복하게 할 수 있나?[최영해의 폴리코노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재선에 낙선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지사 시절 당시 야당인 민주당 출신을 부지사로 발탁하는 등 정치 통합, 연정(聯政)에 관심이 많았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남 지사는 국민을 위해서라면 여야가 서로 으르렁 거리지 말고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승자가 싹쓸이하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그게 어디 쉽게 되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6개월 일본 연수를 마치면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자유대에서 독일의 연정체제를 배워 미래의 한국 정치에 접목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걍팍한 정치 현실에 ‘행복한 정치’를 꿈꾸던 목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촛불 이후에 극단 정치 회귀 실망
“촛불사태 이후 새 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현 정부의 ‘적폐청산’은 한국 정치(政治)를 극단적 분열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제3의 길, 여야 연정을 주창하며 정치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했던 저로선 더 이상 할 일이 없더군요. 이제 정치는 깨끗하게 접었습니다.”
그는 도쿄와 베를린에서 1년 동안 공부한 다음에 귀국해 2020년 총선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거의 편 가르기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이젠 더 이상 정치가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베를린 행은 포기했다. 그리고 재작년 5월 새 삶을 살겠다며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여의도 정치에 몸담은 지 20년 만이었다.
지난 달 29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빅케어(BIGCARE)’ 사무실에서 만난 남경필 대표이사(전 경기도지사)는 20년 동안 지켰던 정치 현장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지사 시절 야당에 먼저 손을 건넸지만, 정치는 자신의 바람과 거꾸로 굴러갔다. 문재인 정부가 극한 대결의 정치로 회귀하는 것을 보고 정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정치에 복귀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총선과 보선에 같이 힘을 모 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옛 동지들이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 대표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복귀를 설득하지 못했다.
##‘기술 혁신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청바지에 캐주얼 차림인 남 대표는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살도 조금 빠진 듯 사진기자에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흡사 스타트업 청년 모델 같았다. 기자에게 손수 원두커피를 내려 한잔 건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도지사 때 스타트업 캠퍼스를 만들면서 청년들에게 창업 조언을 했는데, 기술 혁신으로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껴 스타트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지사 때 알고 지내던 ‘델레오’라는 회사의 대표와 함께 지난 해 10월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건강을 통해 삶을 행복하게 한다’는 게 경영 방침이다. 테헤란로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서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앉아 일하고 있었다. 유력한 대권후보로도 비상할 수 있는 경기지사를 한 관록이지만 이제 ‘지사님’ 티는 살짝 벗어난 것 같다.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의료 데이터입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병원도 가는데 정작 나에겐 데이터가 없어요. 내 건강 데이터는 병원 것도, 나라 것도, 구글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아야 합니다.”
남 대표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의료데이터 주권(主權) 확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아 자신의 건강과 행복에 쓰여야 하는데도 지금은 방치돼 있는 게 현실이다. ‘빅케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깔아 본인 공인인증을 하면 건강보험공단에 있는 7개 항목(투약 및 병원 기록)을 넘겨받을 수 있고, 여기다 종합병원 건강검진 기록 등 30가지 항목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런 데이터로 개인이 각자 건강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빅케어가 도와주는 일이다.
##육체뿐 아니라 마음도 케어
“요즘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합니다. 욕이라도 하고 싶은 속상한 마음을 빅케어에 털어놓으면 그 사람의 감성을 분석해 우울증 분석을 할 수 있고, ‘마음 케어’도 할 수 있습니다. 앱을 통해 호흡법이나 요가법을 가르쳐주고 전문상담사와 적합한 병원을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의료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결합되면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디지털 백신’으로 치유하면서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 앱에서 자신의 DNA와 과거 건강진단 및 투약 이력에다가 일상에서 섭취하는 음식물, 운동 상태, 장내 미생물 검사, 단백질 검사 등 데이터로 매일 건강을 관리해야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홈플러스 등과의 업무 제휴도 맺을 방침이다. 도지사 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명 종합병원과도 협업할 계획을 세워놓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이팅게일 프로젝트’
사무실 벽 한 켠은 화이트보드로 빅케어의 비즈니스 플랜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맨 위쪽에 ‘나이팅게일 프로젝트’가 눈에 띄었다. 그는 “나이팅게일을 간호사로 알고 있지만 그는 수학과 물리학 언어학 간호학 등에 정통한 통계학자였다”며 “귀족 집안 출신으로 1800년대 크림전쟁에 참전해 병상의 약품 관리와 환자 차트를 다이어그램 등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병원의 과학화를 만들어냈다. 빅케어가 추구하는 의료 시스템의 변화가 이런 모습이다”고 강조했다. 의료 데이터를 갖고 장차 어떻게 비즈니스를 발전시킬지 협업할 파트너도 꾸준히 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또 한쪽엔 아라비아 숫자로 9988124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만 앓다가 이틀 만에 죽자는 얘깁니다. 건강한 삶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죽음을 맞는 길이죠. 정치에서 이루지 못한 행복을 이곳에서 꼭 달성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회원 5000명에 앱을 다운 받은 사람이 7000명, 이제 갓 태어난 걸음마지만 5년 뒤 빅케어는 IPO(기업공개)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 나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구글도 창업 초기 5년은 꾸준히 해 성과가 나왔습니다. ‘헬스케어의 구글’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몸과 정신 DNA 미생물 웨어러블 로그인 데이터로 ‘빅케어’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 나가 있어도 두려울 게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다.
##정치에 대한 주문
마지막으로 ‘보수 야당이 인물난을 겪고 있다’며 정계 복귀 의사를 넌지시 떠봤다.
“빅케어에는 보수와 진보가 다 있습니다. 양쪽이 모두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예측이 안 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정치가 사업하는 멋, 일하는 맛을 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이긴 편이 모든 것을 갖는 정치와 달리 서로 협업해 이익을 창출하고 기여한 만큼 이익을 공유하는 비즈니스 무대에서 남 대표가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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