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선 전 회장 "文정부, 규제완화 C-학점"

노희준 2021. 2. 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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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이오협회장 사임한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인터뷰
데이터 3법, DTC 규제 샌드박스 등에서 "벽 느껴"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 선도자 전략으로 바꿔야"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마크로젠 빌딩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문재인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학점으로 치면 C이상은 주기 어렵습니다. D를 주고 싶은데, 정부도 어려운 점이 있으니 C-를 줄 수밖에 없네요.”

최근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서정선 전 회장이 내놓은 문재인 정부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한 총평이다.

서정선 전 회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다. 2019년 2월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 벤처기업인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규제완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이제는 속도감 있는 규제완화를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 전 회장은 당시 ‘바이오는 산업’이라며 미래 의학이 될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의학’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네거티브 방식(안 되는 것만 빼고 모두 허용)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강남구 마크로젠빌딩에서 만난 그는 “벽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바이오협회를 지난 10년간 이끌면서 335개 회원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마크로젠 빌딩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 전 회장은 우선 ‘가명정보’를 정보 주체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예로 들었다. 서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께서 ‘정보가 석유’라는 말씀까지 하셨지만, 부처는 마치 대통령께서 뒤로는 다른 말씀을 하신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며 “부처에서는 ‘잘못하면 내가 다친다’는 식으로 데이터 3법 관련 규제를 안 풀어줬고 바이오산업을 하는 사람은 애매한 규정 탓에 잘못하면 감옥에 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데이터 3법의 시행령 중 ‘데이터 활용을 막는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개인정보보보호법 시행령 14조2항(개인정보의 추가적인 이용·제공 기준)부분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업계 의견을 반영해 규정을 정비했다. 당초 정보 주체 동의 없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한 4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것에서 ‘각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로 수위를 낮췄다. 4가지 고려사항의 불명확한 표현(수집 목적의 상당한 관련성, 제3자 이익 침해 등)도 삭제했다.

서 전 회장은 하지만 “(시령행 개정안은) 상당 부분 고쳐졌지만 근본적으로 액션을 하는 데 명료함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며 “(정보주체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이용할 때)4가지를 고려한다고 한 게 여전히 애매하다. 나중에 문제에 생기면 ‘다 잘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걸고넘어질 수 있고 재판에서도 이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협회에서 꺼낸 화두 중의 하나가 ‘바이오는 속도’라는 것이었는데, 정부는 규제 완화 속도를 느리게 해놓게 ‘다 해줬잖아’ 이런 식이었다”면서 “포장도 안 돼 있었던 길을 뚫어놓긴 했지만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속도 제한을 걸어놨다”고 날을 세웠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마크로젠 빌딩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 전 회장은 규제샌드박스(규제 유예·완화)의 DTC(소비자직접의뢰) 유전자 검사 실증 특례사업도 비판했다. DTC는 병원을 통하지 않고 유전체 기업에 의뢰해 검사를 받고 결과를 통보받는 유전자 분석 서비스다. 2016월 6월에 피부, 탈모 등 12개 항목을 두고 DTC 유전자 검사가 도입돼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암 등 질병 발생 예측 검사 항목이 제한돼 시장은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9년 2월 규제 없는 곳에서 맘껏 시작해보라는 취지로 질병 예측과 관련한 검사를 포함한 DTC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 대상(실증특례 제도)으로 선정했다. 사업은 1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9월에야 겨우 시작됐다. 의료계와 학자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비영리기관인 보건복지부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에 발목이 잡혀서다.

그는 “많은 협회에 있는 유전체 기업들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규제샌드박스는 일단 사업을 하게 하고 문제점이 뭔지 알아내자는 것”이라며 “산업부에서 규제샌드박스가 시작된 게 2년쯤 됐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놀랍게도 아직도 (DTC 유전자 검사 실증 특례) 사업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전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마크로젠(038290)은 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으로 선정돼 인천경제자유구역 거주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뇌졸중, 대장암 등 13개 질병을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 연구 목적 사업을 신청했지만, 당뇨 1개 항목에 대해서만 IRB 승인을 받은 상태다.

서 전 회장은 “IBR에서 위원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소신으로 안 된다고 하면 통과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위원회에서 한두 번 이런 부분을 신경 쓰라고 주의를 줄 수는 있지만, 보완해도 계속 안 된다고 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서 전 회장은 “한국은 성장할 때 모델이 빠른 추격자 전략이라 남이 정해주면 빨리 뛰기만 하면 됐지만, 바이오는 방향이 없고 미국과 일본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가야 할 때”라며 “자꾸 옛날 방식에만 집착하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선정하고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의하면서 풀어가야지 새로운 미래로 갈 때 플렉서빌리티(유연성)가 생긴다”고 힘줘 말했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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