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향한 부당한 비판, 장관이 막겠다"..홍남기, 9번째 소신은 지켜낼까

세종=박성우 기자 2021. 2.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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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의 9번째 소신… "장관이 막겠다, 2월 추경 이르다"
이낙연 ‘선별·전국민 지원 동시 추진’... "정부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재부를 향한 어떠한 부당한 비판도 최일선에서 장관(홍 부총리)이 막겠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하겠다" 발언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장관이 막겠다"며 제동을 걸었다. 작년 1~4차 추경을 비롯해, 1~3차 재난지원금까지 처음엔 부정적인 의견표명을 했다가 결국에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입장 번복을 했던 홍 부총리의 소신이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 부총리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국민 보편 지원과 선별 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실상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별·전국민 지원 동시 추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곳간지기’ 이 대표 발언에, 홍 부총리 "기재부 폄하 말라"

홍 부총리는 이낙연 대표의 국회 연설이 끝난지 3시간쯤 뒤 페이스북에 1518자 길이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홍 부총리는 이 대표 연설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정책 결정시 정책의 필요성, 합리성이 중요한데, 모든 정책결정에 코스트(cost·비용)가 따르고 제약이 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며 "정부도, 저도 가능한 한 모든 분들께, 가능한 한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싶지만 여건이 결코 녹록치 않다. 재정 운영상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보다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적재적소(適材適所)‘ 가치가 매우 중요하고 또 기본"이라고 했다.

앞서 "국가채무 증가가 전례 없이 가파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나라 곳간을 적절히 풀어야 할 때가 있다. 풀 때 풀어야 다시 채울 수 있다"은 이낙연 대표의 연설을 비판한 내용으로 해석되는 내용이다.

이미 정부의 재정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입장을 강조한 홍 부총리는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사용했던 ‘곳간지기’라는 표현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코로나 대응을 위해 확장재정을 주장하면서 재정당국을 공격한 이재명 경기지사를 향해 "기획재정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기재부 내부에서는 ‘구박한다’라는 표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분위기였다. 구박은 보통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구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않는다. "언제부터 경제부총리가 여당 대표의 하급자였냐" "우는 애 달래주는거냐"는 날선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는 "재정이 제 역할을 안 한다고, 단순히 곳간지기만 한다고 기재부를 폄하하는 지적이 있다. 적절하지 않은 지적이고 또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다"면서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이 대표가 언급한 2월 추경에 대해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은 3월에 마무리될 것이고, 이후 경기 동향도 짚어보고 금년 슈퍼 예산 집행 초기 단계인 재정 상황도 감안해야 하므로 2월 추경 편성은 이를 것으로 판단된다"며 "필요시 3월에나 추경 논의가 가능할 듯 보여진다"고 했다.

◇ 부총리의 9번째 소신 지켜질까… "소신 지켜야, 정치권도 목소리 들어야"

하지만 ‘경제부총리 패싱’이 일상화 된 상황에서 홍 부총리의 9번째 소신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정치권 등 요구에 맞서 자기 주장을 폈지만 대부분 홍 부총리의 뜻과 다르게 결론났기 때문이다. 대주주 주식양도차익과세 기준 3억원 하향 조정을 당초 계획과 다르게 철회하라는 정치권 요구에 맞서다 자신의 소신이 수용되지 않자 공개 사표를 낸 지난해 11월에는 사표 제출 하루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일으킨 바 있다.

홍 부총리는 2019년 증권거래세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밝혔지만 결국 0.05%포인트(P) 인하가 결정됐다. 그해 3월에는 미세먼지 추경을 검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추경이 편성됐다. 작년 4월 긴급재난지원급 70% 선별지급을 제시했지만, 여당의 뜻대로 전 국민 지급이 결정됐다. 부동산 감독기구, 2차 재난지원금, 재정준칙 등 홍 부총리의 소신대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지난달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손실보상 법제화를 추진하자, 김용범 차관은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에 정 총리는 "개혁 저항 세력"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며 질타했다. 이에 홍 부총리는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자영업자 영업제한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검토하겠다"고 물러선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 총리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의사표명을 하면서도 홍 부총리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짚어볼 내용이 많다. 시간이 필요하다"며 손실보상 법제화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여당의 ‘구박’에 대해 ‘도을 넘어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낙연 대표의 추경 편성 지시에 홍 부총리가 반대 의견을 낸 것도 이런 내부 분위기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경제부총리는 "당정 간 논의는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외부적으로 국민에게는 통일된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과도하게 반시장적인 요구를 할 때는 소신있게 반대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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