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끝나면 뒷전, 인건비만 3배 올라" 시름 깊은 지방 공단 [현장르포]

파이낸셜뉴스 2021. 2.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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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산단 가봤더니
사업성 검토 없이 우후죽순 조성
전북 88개 산단·농공단지 있지만
산단관리팀 조차 없어 지원 못받아
전북 김제 황산농공단지 내 공장 담벼락 옆에 사용했던 시설물이 위험한 상태로 바닥의 깨진 벽돌 몇개에 걸쳐진 채 방치 돼 있다. 사진 촬영한 위치에는 인도와 도로가 있다.
전북 김제의 순동공업단지. 노후된 인도는 정비가 되고 있지만 그 아래는 이렇게 콘테이너와 나무 뿌리들이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다.
도내 산업단지 가운데 절반 가량이 착공 20년이 지난 노후 산업단지로, 이들 산단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가한 전북의 한 농공단지. 사진=김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전주·김제=김도우 기자】 "산업단지나 농공단지를 조성할 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양률 홍보에만 관심이 있으니 현장의 기업인들은 답답한 심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 코로나19 등 제조업 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자체가 적절한 사업성 검토 없이 산단과 농공단지를 우후죽순으로 조성한 탓이 무엇보다 크다는 지적이다.

2일 전북도 및 지자체에 따르면 전북 14개 시·군에 88개의 일반산단·농공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이들을 지원할 전북도청에는 '산단관리팀'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전담부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전북과 경북이 유일하다.

■주말엔 사장만 일하는 '공단' 수당에 직원 엄두 못 내

김제 황산농공단지에 있는 한 작은 제조업체.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대표 A씨는 토요일인 30일 기계를 수리하러 공장에 나왔다.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A 대표는 "주말에 직원들을 작업에 동원하면 오히려 손해"라며 "주말 수당이 1.5배나 되는데 이렇게 주고 나면 우리가족 생계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신 공작기계의 볼트를 풀고 조여 가며 점검 작업을 했다. 평일에 작업을 하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주말에 짬을 냈다.

설 명절을 일주일 남짓 앞둔 김제 농공단지 주말은 적막했다.

예년 같으면 명절 전 앞당겨진 납품기일에 맞춰 분주했을 산단에 오가는 차량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오직 몇몇 사람들만 쌓인 일거리들을 숙제하듯 매듭짓고 있었다.

바쁜 작업 중에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이들은 정부의 친노동 정책, 제조업의 몰락 등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냈다. 한 번 말문을 연 이들의 한탄은 끝나지 않았다. 최저임금 문제,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수십년 업력의 기업을 접고 고향 농촌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도 있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2000년대 중반 최저임금 정해질 당시 정해진 납품단가는 지금도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세배 가까이 올랐다"며 한숨이다. 그는 "연 매출의 60%가 인건비"라고 토로했다.

그는 "손잡을 때가 없다. 어디에 어떻게 물어야 할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금 융통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살고자하는 사업이지만 요즘 같은 때는 정말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북 산단 노후율 50%… 인명피해도 최다

20년 이상 된 노후 산업단지가 전국 5개 권역 중 호남권에 가장 많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권 중에도 전북이 50%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 산단 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도 5개 권역 중 가장 많이 발생했다.

송갑석 국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전국 산업단지 노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북은 88개 산단 중 44개(50%)가 노후 산단으로 분류됐다.

노후 산단에서 발생한 인명피해도 호남권에서 가장 많았다.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호남권 산단에서 발생한 166건의 사고에서 23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건수가 가장 많은 수도권 산단에서는 사고 411건 중 인명피해는 47명으로 1건당 0.11명을 기록한 반면 호남권 산단에서는 1건당 1.44명으로 수도권보다 13배 많았다.

김제시 순동 일반산업단지에서 ㈜참고을을 운영하는 김윤권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마인드에 따라 산단이 달라진다"며 "이 단지에는 35개 기업이 있는데 기업들이 십시일반 갹출해 전지작업, 풀작업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가로등도 들어오지만 산단 초창기에는 밤에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며 "기업하기 좋은 도시냐 아니냐는 산단을 보면 안다"고 강조했다.

김용삼 전북도 투자금융과 기업유치팀장은 "농공단지 방향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해 용역이 추진되고 있어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게 추진할 것"이라면서 "농공단지 조성부터 시장·군수들의 마인드가 중요한데 농공단지를 관리하는 주무부처가 없어 지역 기업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시급히 건의하려고 하면 난감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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