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파우스트 계약한 수치, 인권 영웅·군부 동거 모두 놓쳐"

이광빈 2021. 2. 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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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영웅인가 군부의 포장지인가. 미얀마의 지도자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하게 된 배경을 다룬 기사다.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와 관련해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의 편을 들며 학살을 부인한 데 대한 뿌리 깊은 실망감이 담겨있다.

뉴욕타임스는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에 보여준 태도에 대해 '파우스트의 약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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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수치 실각 배경 분석 "최고사령관과 의사소통 거의 없어"
미얀마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 군병력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민주주의의 영웅인가 군부의 포장지인가. 미얀마의 지도자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이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하게 된 배경을 다룬 기사다.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와 관련해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의 편을 들며 학살을 부인한 데 대한 뿌리 깊은 실망감이 담겨있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내 민주화를 주도했던 수치 국가고문이 비인권적인 행위에 동조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은 가운데, 군부 관리마저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에 보여준 태도에 대해 '파우스트의 약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간이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야기인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주인공으로 수치 국가고문을 비유한 셈이다.

기사에는 수치 국가고문이 군부와의 '불편한 동거'를 유지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된 지점들도 소개됐다.

수치 국가고문은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로부터 오랜 시간 가택 연금을 당했다.

2008년이 돼서야 군부는 국제사회 압박을 의식해 의회 의석 등에서 군부의 일정 지분을 명문화한 헌법적 장치를 마련한 채 선거에 의한 민간 정부 수립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수치 국가고문이 이끈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53년간의 군부독재를 끝냈다.

수치 국가고문은 총선 승리 이전부터 군부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0년 가택연금에서 벗어난 뒤 군부의 한 인사와 자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미얀마 군의 창설자인 아웅산의 딸인 수치 국가고문은 군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군부가 2017년 로힝야족에 대해 공격을 강화하자 수치 국가고문이 장군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치 국가고문은 2019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로힝야 집단학살' 재판에서 미얀마군이 로힝야 반군의 공격에 대응한 것으로 집단학살 의도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퇴역 장교 등을 인용해 수치 국가고문이 이번 쿠데타의 핵심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의사소통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자신의 지지세력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수치 국가고문은 적어도 1년간 군부 수장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정치가 매우 사적으로 움직이는 국가에서 위험한 침묵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수치 국가고문이 흘라잉 최고사령관과의 협상에 실패해 군부의 귀를 잃었고, 로힝야족 '인종청소' 논란에서 군부를 옹호해 자신을 수십 년 간 지지해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수치는 자신이 인권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말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평가들에게 맞섰다"면서 "하지만 슬픈 점은 그가 둘 다 잘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뉴욕타임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가 수치 국가고문의 석방과 쿠데타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미얀마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얀마의 전략적 중요성을 경시한 가운데 통신망, 사회간접자본, 에너지 분야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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