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칼럼] 보수정권이 북한 원전 비용을 댄 이유

한겨레 2021. 2. 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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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칼럼]더 중요한 점은 왜 북한에서의 발전소 건설 추진이 진보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 정부에서도 나왔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북한에 발전소 건설 추진은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 합의로 인해 북한은 1994년부터 5년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한 흑연감속로의 운영을 중단했다. 가장 오랜 기간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분단된 한국에서 남북관계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최근에는 부동산 정책이 있지만, 앞으로의 남북관계 향방 역시 정부의 지지율뿐만 아니라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 짓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야당은 이를 문제 삼아 특검이나 국정조사까지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 원전을 ‘상납’(?)하려 한다는 비난도 등장했다. 또다시 ‘막말 잔치’가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검토는 우선 남북 정상회담에서 원전 건설 지원과 관련된 논의가 있었는가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왜 북한에서의 발전소 건설 추진이 진보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 정부에서도 나왔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북한에 발전소 건설 추진은 1994년 있었던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이 합의로 인해 북한은 1994년부터 5년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한 흑연감속로의 운영을 중단했다. 가장 오랜 기간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경수로 원전의 건설과, 에너지 부족을 대체하기 위한 대북 중유 공급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시기 대북 강경정책을 주장하던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며 제네바 합의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건설을 위한 자금의 70%를 충당했었다. 결과적으로 대체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제네바 합의는 파기되었다.

북한 핵을 동결하기 위한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 제조 과정을 중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에너지기구에 복귀한다는 합의였다. 이를 위해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며 남한에서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채 1년을 가지 못하고 북한이 갖고 있었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불법 세탁자금 동결과 2006년 5월 한-미 연합 전시증원연습, 그리고 동년 10월에 있었던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파기되었다. 9·19 합의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이후 2007년 2·13 합의에서 60일 이내 중유 5만톤을 제공하고 향후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95만톤을 제공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에서의 정권 교체와 북한의 2차 핵실험 등으로 또 한번 합의가 무산되었다.

이상과 같이 지금까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동의했던 것은 원전을 중단하는 대신 대체 에너지 제공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정부에서 북한에 원전 건설을 제안했다면, 이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수 정부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또다시 정쟁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 내 다양한 전문가들에게서 의견을 청취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내 정쟁을 통해 서로 다른 목소리가 전달될 경우 미국 정부로서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할 가능성이 더 적어질 공산이 크다.

김영삼 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영삼 정부는 초기에 장기수의 대북송환과 같이 전향적인 조치를 통해 북핵 위기 속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문 파동을 겪으면서 대북정책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북-미 간 합의에서 소외되었지만, 북-미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돈은 대부분 한국이 지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핵 문제는 방역과 함께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선거가 눈앞이라 해도 정쟁화될 사안이 아니다. 1987년이나 1996년과 달리 2000년 이후 북풍이 더 이상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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