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상징에서 군부와 거래 정치인으로..결국 실패
[경향신문]
“민주주의 아이콘에서 군부와 거래를 하는 정치인으로 변신을 꾀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사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군부 쿠데타로 관저에 구금된 수지 고문에 대해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이렇게 평했다. 2017년 벌어진 미얀마 군경의 로힝야족 대량학살을 옹호하고 군 장성들의 편에 섰던 수지 고문이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지도, 무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수지 고문은 미얀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2015년 문민정부 탄생의 주역이기도 하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암살된 뒤 인도와 영국에서 성장했지만 198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군사정부는 수지 고문이 정권의 위협으로 떠오르자 1989년부터 15년간 가택에 연금했고, 이후에도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며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수지 고문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1991년 민주화 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5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수지 고문은 외국 국적의 배우자를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에 오르지 못하고 ‘국가고문’(국가 자문역)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미얀마 최고지도자가 됐다.
이후 수지 고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53년간 이어진 군사정권을 끝냈지만, 군부의 그림자는 거두지 못했다. 국가고문에 오른 뒤에는 자신을 가뒀던 군 수뇌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도 종종 군과 손을 잡았다. 이런 행보는 군부와 국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는 최근 1년간 긴장 관계에 있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2017년 군부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대량학살을 수지 고문이 옹호하자 국제사회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벨평화상 철회 요구가 빗발쳤고 미얀마 정부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피소됐다. 2019년 재판 당시 수지 고문은 “인종청소 보도는 가짜뉴스”라며 군경을 변호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국장은 “수지 고문은 국제사회 비판에 ‘나는 인권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슬프게도 두 역할 모두 해내지 못했다”고 NYT에 지적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바수키 샤수트리 연구원은 “국제사회가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도덕적 검증에 실패한 수지 고문은 계속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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