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신기루였을 단톡방 전쟁 [꼬다리]

2021. 2. 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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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얼마 전, ‘단톡방’이 폭파됐다. 대학 친구들이 모여 일상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부동산이 문제였다. 일찍 결혼하면서 집을 산 친구가 말했다. “세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 원·투룸에 세 들어 사는 친구가 답했다. “나도 그 세금 좀 내봤으면 좋겠다. 집값 올라서 몇억 벌었지 않냐.” 자가 보유자의 답은 이랬다. “‘영끌’해서 산 거다. 네가 안 사놓고는 왜 투정이냐.”



대화를 지켜보며 친구 각각의 자산증감 차트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의외로 서울 부모님 집에 꾸준히 거주한 친구가 수익 2위였다. 1위는 지방 출신. 10여년 전 대학에 들어오면서 부모님이 서울에 집을 사줬다. 3위는 결혼을 일찍해 집을 산 친구, 그 외엔 다 ‘투정러’다. 나도 지방에서 왔지만 서울에 집을 살 여력은 없었다.

같은 세대 안에서 운명이 갈렸다. 보통은 결혼이라도 앞둬야 집 살 생각을 하는데, 그 결정을 내린 시기에 따라 아파트 구매 가격이 다르다. 같은 집인데도 몇년 전과 2억~3억원쯤은 우습게 차이가 난다. 과거엔 LTV, DTI 비율이 높아 대출을 많이 ‘땡길’ 수도 있었다. 지금은 양가가 힘을 합쳐도 요령부득인 경우가 많다. 같은 시기 결혼하며 전세 들어갔던 친구는 부동산 얘기만 나오면 눈에 핏발이 선다. 

모두가 나름대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다른 아파트도 똑같이 값이 올라 어차피 이사 못 간다’고 말한다. 강남구·송파구처럼 집값 비싼 동네의 거주자를 부러워한다. 서울 태생인 친구는 ‘어차피 부모님 집이지 내 돈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 무주택자는 아파트 보유가 일단 꿈같다. 월세인 경우 돈 모으기도 쉽지 않으니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감정이 상한 친구가 단톡방을 나간 날, 나는 한국사회 갈등의 압축판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단톡방이 사라진 지 며칠,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아파트 ‘로또청약’에 20대가 당첨됐다는 기사를 봤다. 분양가 5억원, 거래가 10억원이니 앉아서 5억원을 벌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5억원이 부담된다면 1억원 계약금만 내도 됐다. 분양권만 팔아도 몇억을 이득 볼 거라니, 부러웠다. 그러다 ‘현타’가 왔다. 로또청약 당첨 확률은 몇십만분의 1. ‘결혼만 일찍 했어도’, ‘부모님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몇시간 뒤, 당첨된 20대가 아파트 계약을 포기했다는 기사가 떴다. 계약금 1억원을 마련하지 못했을 거란 추정이 나왔다. 댓글은 각양각색이었다. ‘1억을 못 구해서 5억을 버리다니 어리석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했어야지’라는 반응 아래, ‘1억을 어디서 구하냐. 나도 포기했을 것’이란 댓글이 달렸다.

포기한 20대도 우리처럼 ‘조금만’, ‘일찍’이란 단어로 불평했을까. 그에게 집이란 조금, 일찍은커녕 ‘무슨 수를 써도’ 닿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포기했다’는 전언뿐, 사라진 20대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디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친구들과 난 꽤 많은 얘길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폭파된 단톡방이 사실은 신기루였는지도 모르겠다.

조문희 사회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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