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정부 시위 예전과 다르다
2021. 2. 2. 16:43
[주간경향]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적힌 빨간 손팻말을 꽉 잡아들고, “나발니를 석방하라” 목청껏 외쳤다. 뜻을 함께하는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에서 열린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 요구 시위에 참석한 여느 러시아 시민의 모습이다. 현지 언론은 이날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기온이 영하 50도 밑으로 떨어진 시베리아 야쿠츠크 지역에서도 수백명이 모였다. 러시아 비정부기구 ‘OVD-인포’에 따르면 이날 시위 참가자와 현장을 중계한 언론인 38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적힌 빨간 손팻말을 꽉 잡아들고, “나발니를 석방하라” 목청껏 외쳤다. 뜻을 함께하는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에서 열린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 요구 시위에 참석한 여느 러시아 시민의 모습이다. 현지 언론은 이날 100곳이 넘는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기온이 영하 50도 밑으로 떨어진 시베리아 야쿠츠크 지역에서도 수백명이 모였다. 러시아 비정부기구 ‘OVD-인포’에 따르면 이날 시위 참가자와 현장을 중계한 언론인 38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나발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야권 인사다. 나발니는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에 “사기꾼과 도둑놈들의 정당”이라는 발언과 푸틴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으며, 2011년 열린 러시아 총선에 푸틴 대통령의 선거 개입설을 제기했다. 지난해 8월 그는 연방보안국(FSB)으로 추정되는 세력으로부터 독극물 공격을 받았다. 독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몸 상태가 나아지자 러시아로 귀국하는 대담한 선택을 했다.
정부 비판의식 높아진 시민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의 세력 확장을 막아야 했다. 나발니는 2014년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 6개월,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집행유예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귀국하자마자 체포했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나발니 석방 촉구 집회도 불허했다. 그럼에도 유례없이 많은 러시아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이번 시위는 러시아 안팎으로 두가지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러시아의 사회인류학자 알렉산드라 아르키포바는 뉴욕타임스(NYT)에 “나발니는 러시아인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정부의 부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며 “그는 우리가 이것(정부의 부패)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러시아 시민이 푸틴 정권을 ‘장기 집권 세력’ 정도로 보는 시각을 넘어 ‘부패·독재 세력’이라고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사람들은 나발니가 사회에 던지는 반정부 메시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시위를 벌였고, “부패 정권” “푸틴은 사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는 2020년 급락한 푸틴 정권의 지지율과도 맞물린다. 독립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센터 조사에 따르면 푸틴 정권의 지지율은 2015년 89%에 달했지만, 2018년 82%, 2019년 70%, 2020년 59%로 점점 떨어졌다.
물론 2011년부터 부정선거, 야당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의 총격 사망 등을 계기로 러시아에서 수차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나발니 석방 요구 시위 규모는 “2018년 반정부 시위 이후 가장 컸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은 평가했다. 조사기관마다 집계한 시위 참여 인원은 다르지만, 수도 모스크바에만 4000~4만명,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1만명 이상이 모인 것으로 추산됐다.
극동지역·자유주의자 중심으로 일어난 기존 시위와는 달리, 새로운 지역·성향의 사람들도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 영국의 위기 컨설팅 전문업체인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애널리스트인 다라그 맥도웰은 “반정부 활동이 드물었던 세바스토폴과 케메로보 지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러시아 프리랜서 언론인 세르게이 고로디셰닌은 “공산주의자와 코로나19 존재 부정론자도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거리 시위의 연장선상으로 10~20대 젊은 세대는 틱톡 등 SNS에서 푸틴 정권을 풍자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시위는 푸틴 대통령의 위기 대응 양상에 변화를 줬다.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 측에서 ‘푸틴이 뇌물을 받아 흑해 부근에 호화 궁전을 지었다’는 의혹에 대해 지난 1월 25일 직접 입을 열어 반박했다. 부정선거, 나발니 체포, 혼외자식 논란 등 굵직한 정권의 부패가 폭로될 때마다 침묵하거나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궁)’ 이름으로 반박 입장을 발표했지, 푸틴 대통령이 몸소 나서 해명하는 일은 드물었다.
시위는 지난 1월 31일에도 열렸으며 나발니에 실형이 선고된 2월 2일에도 열렸다. 러시아 사회운동가 빅토르 라우는 “사람들은 권위주의 정권과 부패에 지쳤다”며 “나발니는 이에 불씨를 댕겼다”고 NYT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러시아와 ‘바이든호’ 미국 간 갈등 시작점
러시아는 미·유럽 간 동맹 강화를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정상들과 통화하며 ‘동맹’을 강조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구성된 집단 방위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측은 1월 27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과 바이든 대통령이 통화하며 “러시아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중국의 부흥이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과 러시아의 미국 정부기관 해킹 의혹 등을 두고도 갈등을 벌일 수 있다.
나발니와 러시아 시위대 구금은 양국 외교 갈등의 명분이자 시작점이 됐다. 나발니 체포 직후 조 바이든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상태였던 제이크 설리번은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위 전날인 지난 1월 22일에는 주러 미국대사관이 공식 홈페이지에 시위 집결지를 상세하게 올렸다. 시위대가 체포되자 미 국무부는 “러시아 정부가 시위 참가자와 언론인에게 저지른 가혹한 일들을 비난한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내정간섭 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국제사회의 ‘편가르기’도 시작됐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만프레드 베버 유럽국민당(EPP) 대표 등 유럽 인사들은 나발니와 시위대 체포를 일제히 비난했다. 반면 미국과 견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정부는 미국에 “내정간섭 하지 말라”며 러시아와 동일한 입장을 밝혔다.
윤기은 국제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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