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한발 물러선 이란 "EU에 중재 맡기자"
[경향신문]
이란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유럽연합(EU)에 중재를 맡기자는 안이다. 미국도 최근 이란과 협상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양국의 극적 협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모하마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이란과 미국이 핵합의에 복귀하기 위한 조건들을 EU에서 “맞춰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제프 보렐 EU 외교안보 대표가 JCPOA를 살려낼 코디네이너로서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와 이란이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한 연출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어야 JCPOA에 복귀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EU 중재라는 새로운 안을 제시한 이유는 임기 말에 접어든 하산 로하니 정부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리프 장관은 “미국이 JCPOA에 복귀할 시간은 무제한이 아니다. 기회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오는 6월 대선을 앞둔 이란은 3월부터 사실상 대선 체제에 돌입한다. 이란 내 대미 강경파의 압력을 받는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는 두 달 안에 외교 성과를 내야 한다. 이란은 2월 말까지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부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이란은 미국을 겨냥 핵무기를 개발할 의지가 없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자리프 장관은 “핵무기를 만들고 싶었다면 얼마 전에 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핵무기가 우리의 안보를 강화하지 않고 우리의 이데올로기에도 모순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도 최근 대이란 협상 전담팀을 꾸리며 대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이란 온건파로 꼽히는 로버트 말리를 이란 특사로 임명했다. 말리는 2000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과 2015년 JCPOA 합의를 이끈 백악관 관료 출신이다. 말리를 임명한 것은 바이든 정부가 JCPOA 협상 복귀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도 협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NBC 인터뷰에서 만약 JCPOA가 깨지면 “이란은 몇 주 내 우라늄을 축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2015년 체결한 JCPOA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JCPOA는 이란이 IAEA의 핵사찰을 받고,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JCPOA 복귀를 약속한 바이든 정부는 탄도미사일 조건 등 이란에 추가 사항을 요구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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