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상고의 추억 [김윤우의 유쾌한 반란]

2021. 2. 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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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111년 전통을 가진 야구 명문 덕수고가 또 이전한다. 덕수고의 특성화계열은 경기상고로 통합되고 인문계열은 2021년 3월까지 위례신도시로 이전한다. 덕수고는 빈번하게 부지를 이전했다. 현 을지로 페럼타워 부지에서 1910년 설립된 덕수고는 1933년 현 종로구청 부지로, 1936년 불의의 화재로 교사(校舍)가 전소돼 현 매동초등학교가 있는 매동공립보통학교로, 1939년에는 서소문동에 있는 태평공립심상소학교로, 1946년 현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부지에 있던 남대문초등학교 교사(校舍)로, 1947년에는 두산타워 부지에 있던 경성여자실업학교 교사(校舍)로, 1978년에는 당시 서울교대가 있던 현재의 행당동 교사(校舍)로 각각 이전한다. 눈치챘겠지만, 덕수고 이전의 역사가 한국 빌딩의 개발 역사이기도 했다. 빌딩 개발이 필요할 때마다 덕수고가 이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덕수고 야구부원 및 동문들이 학교이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특히 1978년에는 경기고, 서울고, 동대부고, 배명고, 숙명여고, 정신여고 등이 강남으로 이전할 때이다. 흥미롭게도, 위 학교들의 이전 명분은 서울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과 서울 시내에는 교통량이 많아 소음, 진동, 분진, 매연 등이 심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향신문 1980년 9월 27일자 ‘강남 이전 강북학교 부지 대형빌딩 신축 억제키로’라는 제목의 기사는 “서울시는 (중략) 이전학교 부지를 최대한의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빌딩건축을 억제하는 대신 단독·연립주택을 짓도록 유도한다는 방침 아래 이곳에 건물을 신축할 경우 건폐율을 20% 이하로 낮추는 등 건축허가 기준을 크게 강화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경향신문 1981년 5월 22일자 ‘서울시 4대 문안 건물 높이 제한완화’라는 제목의 기사는 “서울시는 (중략) 이전학교 부지는 공원과 사적, 주차장 등으로 활용한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덕수고를 포함한 이전학교 부지는 모두 민간에 매각된 상태였다. 비싼 시내 땅을, 그것도 넓은 단일필지여서 프리미엄까지 주고 매입했는데 공원과 주차장으로 쓰라고 한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면 이것은 단지 여론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그들만의’ 사인(sign)이었을까? 정말 공원이나 주차장 용도로 쓰려면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국가가 계속 소유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경향신문 1981년 5월 29일 ‘고도 조정에 재벌 로비활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서울시가 학교 이전 부지 8만3000여평을 공원,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고 싶지만 이 금싸라기 땅들이 모두 재벌들에게 팔린 것들이어서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고민 중”이라고, 당시의 이 모순된 상황을 전한다.

아니나 다를까. 1981년 8월 말 서울시는 강남 등으로 이전한 4대 문안 11개 학교 부지 건축통제 해제방침을 발표한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건축법보다 약간 깎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결국 빌딩건축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학교 등 공공시설 부지가 민간에게 매각되어 민간개발 부지가 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을 보면, 그래도 그때에는 특혜부여라는 것을 의식하고 명분 쌓기라도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전한 덕수고 부지를 어떤 시행사가 매입해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를 지을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요즘과 비교된다.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민족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말도 그래서인지 불안하다. 차라리 덕수고 부지, 용산 미군기지 모두 토지임대부, 환매조건부 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게 공공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려나.

김윤우는 서울중앙지법·의정부지법 판사, 아시아신탁 준법감시인을 역임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유준의 구성원 변호사이고, 중소기업진흥공단 법인회생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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