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동지 [오늘을 생각한다]

2021. 2. 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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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애석하게도 군대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이등병 시절 작업 중 동기와 몰래 PX에 갔다가 들킨 일이 있다. 이등병들의 일탈에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내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특히 평소 나를 아껴주기로 소문난 양OO 병장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군장 뺑뺑이를 돌고 내무실에 들어서자 나의 친절한 멘토였던 양 병장이 처음 보는 험악한 얼굴로 불호령을 내뿜었다. 털리는 내내 양 병장이 정말 고마웠다. 그의 ‘한 따까리’ 이후 다른 고참들은 그 일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던 고참이 조용히 불러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그가 침묵했거나 나를 감쌌다면 이후의 내무생활은 끔찍했을 것이다.

그때 양 병장에게 배운 것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사적으로 가까울수록 공적 거리 두기는 엄격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끼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

지난달 법원은 서울시 전 직원에 대한 공판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다. 박 전 시장 사건이 알려졌을 때 그를 가장 무겁게 비판했던 인물은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이었다. 그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절망’, ‘참혹’과 같은 단어로 표현하며 당의 미온적 대처에 일침을 가했다. 권 의원은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이며 박 전 시장은 그의 변호인이었다. 35년 전 자신을 변호해준 은인의 성범죄를 참혹하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다. 비판 대열에는 또 다른 동지 정춘숙 의원도 있었다. 정 의원은 박 전 시장과 28년 동안 여성운동을 함께해온 관계다. 사건 초기 박 전 시장과 가까운 이들이 입을 모아 “그분이 그럴 리 없다”며 옹호했을 때 정 의원은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박 전 시장 재임 시절 부시장을 지냈던 진성준 의원은 “박 시장을 가해자로 지목하면 사자 명예훼손”이라며 비판자들을 윽박질렀다. 박 전 시장의 또 다른 여성운동 동지 남인순 의원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격하시키는가 하면 피소 사실을 가해자 측에 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고발당하기도 했다. 권인숙의 일침에 말을 아꼈던 상대진영은 남인순에게는 “추잡한 말장난”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박원순을 지키려 했던 두 부류의 동지들이 있다. 한쪽은 고인에 대한 무리한 옹호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하며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한 사람들이다. 다른 한쪽은 고인이 생전에 지키려 했던 방식으로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며 진실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예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박원순의 동지(同志)다. 전자는 직장 내 성추행범 박원순의 동지이며, 후자는 인권변호사 박원순의 동지다. 박원순의 마지막을 대하는 저들의 상반된 태도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까운 이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동지가 될 것인가. 지금 내 주변에는 어떤 동지들이 있는가.

정주식 직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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