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덮은 저 흙먼지는.." 황사 연구의 대가, 전영신 박사 별세
기상 역사·측우기·독도 연구에도 매진
국내 황사 박사 2호이자 동아시아 황사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전영신 전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57세.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암 투병 중이던 전 박사는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6년 서울대 기상학과를 졸업한 뒤 국립기상연구소에서 기상 연구를 시작했다. 30년 넘게 기상, 특히 황사 연구에 매진한 권위자다.
황사 연구의 개척자로 유명한 전 박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 황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특히 고인이 황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날 관악산을 덮은 황사를 본 게 계기였다. 전 박사는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황사가 눈에 보였는데 흙 먼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오나 호기심이 들었다"며 "황사는 눈에 보이니 대기오염 물질보다 연구하기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94년 근무지를 기상청으로 옮길 무렵 본격적인 황사 연구에 나섰다. 전 박사는 당시 서울대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전 박사가 황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상학자들은 황사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때였다. 당시 황사 발원지인 중국은 한중수교를 맺기 전이라 연구하러 가기 어려웠다.
대신 고인은 1년 동안 일본 기상연구소 응용기상연구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황사를 연구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황사 연구자가 거의 없던 탓에 과거 연구 데이터를 뒤져가며 연구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논문을 썼다.
한중일 환경장관회의서 황사 연구 공 인정받아
전 박사는 국내 황사 농도 측정 모델을 만든 주인공이다. 지상 관측 수치 자료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로 동아시아 전역의 날씨 정보를 종합해 시간대별 황사 흐름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황사 감시 기상탑 설치는 물론 1개월 단위 황사 예측 모델을 만든 것도 전 박사의 작품이다.
전 박사는 황사 연구의 공을 인정받아 2013년 5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에서 환경상을 수상했다. 환경 협력 공로자를 격려하기 위해 2013년에 처음 제정된 상으로, 첫 번째 환경상 수상자란 영광을 안았다.
전 박사는 한중일과 몽골 등 4국의 황사 연구 성과집을 냈고,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황사 예보 협력 체계를 구축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 박사는 기상 역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기상청은 한국의 기상 역사를 정리한 '한국기상기록집'을 2011년부터 꾸준히 발간했는데, 전 박사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전 박사는 기상연구소 황사연구과장을 지내던 2010년 한문학자와 역사학자 등 4명을 모아 황사연구과에 기상역사팀을 꾸렸다. 그는 '황사연구과장이 황사 연구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기후를 알면 미래 기후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전 박사는 한국기상기록집을 완성하지 못한 데 대해 크게 아쉬워했다고 한다. 전 박사의 남편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현 경희대 사이버대 특임교수)은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아내는 기상기록집 작업을 시작할 즈음 매주 주말이면 과학사 공부를 하러 다닐 정도였다"며 "투병 중에도 기상기록집에 대한 애착이 많았는데, 목표였던 25권집필을 다 하지 못해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측우기 연구 발전에 뿌듯해한 전영신 박사
전 박사는 전 세계에 측우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 했다. 조 전 원장은 "전 박사는 조선시대 때 한국에 우수한 강수 측정기가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며 "건강이 회복되면 측우기 연구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전 박사가 이끄는 기상역사팀은 측우기에 새겨진 글 중 일부 지워진 글자 복원에 성공했다. 그가 측우기하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업적 중 하나다.
전 박사는 또 독도 관련 연구에도 공을 들여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는 기상 상황을 정리했다. 국토 연구에도 관심이 많았던 전 박사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로 여기고 울릉도를 자주 찾았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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