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도처에 적대감이 끓고 있다 / 신진욱

한겨레 2021. 2. 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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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전광준 기자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그냥 작디작은 소모품. 그냥 두 손가락으로 살짝 들었다 놔서 바꿀 수 있는 그런 부품일 뿐. 그 소모품 대체할 게 수천수만 개가 뒤에서 대기 중.” “만원 6, 7장 벌어보겠다고 늙은 몸뚱이 이끌고 카트 끌고 일하시는 40대, 50대분들. 겉으론 티 안 내도 속으론 가슴 찢어지실 거다.” “돈 버는 인간은 아주 소수고 상위 직장 한정되어 있고 학벌 스펙으로 시작부터 커트 당하는 거 모르냐.”

윗글은 쿠팡 물류센터의 알바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것이다. 지난 1월20일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 50대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그곳이다.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은 휴대폰도 반납하고 휴식시간도 없이, 매순간 시간당 작업량을 감시받으며 일한다. 거기서 일하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노예’, ‘부품’, ‘버러지’로 부르며 이 현실에 항의하고 있다. 물류센터만이 아니다. 공장, 편의점, 공사장, 콜센터 등 도처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조용히 끓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마틴 립셋은 <여기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저서에서 왜 미국에선 유럽과 달리 노동자들의 연대와 계급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는지를 분석했다. 미국과 역사적 맥락이 다른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이 질문이 유효했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급속한 산업화가 이뤄졌지만 계급과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전면에 부상한 적은 드물었다. 그런 한국에서 지금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와 중산층의 비중은 점점 더 커져왔다. 신광영, 조돈문, 백승호 등의 연구를 보면 농민이 대부분이던 1960년에 노동계급은 경제활동인구의 16%에 불과했지만, 2010년엔 43%까지 올랐고 신중간계급과 합치면 77%에 이른다. 지배층이 1인 1표 민주주의의 혁명적 잠재성을 두려워할 만한 계급구조다. 노동자와 중산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을 정치로 구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자본주의 근본 문제인 노동, 복지, 불평등은 핵심 이슈가 되지 못했다. 군사독재가 심어놓은 반공 이데올로기, 지역주의적 편견, 경쟁·서열·능력주의와 같은 왜곡된 의식들이 만연했고,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고무하고 이용했다.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복지 확대를 종북, 공산주의, 퍼주기, 포퓰리즘으로 비난하는 등의 ‘계급 배반’ 태도가 상당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김용철·조영호·신정섭의 2018년 연구에서 노동계급의 73%, 신중간계급의 70%가 기업이 노동자·소비자를 희생시켜 돈을 벌고 있고, 정부는 기업과 부자 편이라고 답했다. 여유진·김영순의 2015년 연구를 보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정부의 복지 책임과 복지지출 확대를 고소득층보다 확실히 더 강하게 지지했다. 필자가 인천대 박선경 교수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도 소득·고용·자산 등 계층이 낮아질수록 ‘헬조선’ 인식이 강해지는 상관성을 확인했다.

최근 학계의 많은 조사에서 이와 유사한 변화가 보고되고 있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성급한 판단을 경계해야 할 여러 이유가 있다. 여전히 상충되는 조사 결과들이 있고, 이런 패턴이 얼마나 견고한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사회변화의 굵직한 흐름을 본다면, 다수의 노동자·중산층이 자본주의 불평등을 인식하면서 노동, 복지, 분배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중대한 현상이다.

과거엔 희박한 계급의식이 노동정치, 분배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사적 유산이었다면, 지금은 도처에 편재한 계급갈등의 불씨를 정치가 대변하고 정책으로 승화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가 되었다. 비인간적 노동환경, 신분제 같은 차별, 비참한 빈곤 현실, 극심한 불평등, 추락에 대한 불안, 이런 현실들을 이제 많은 사람이 안다. 그리고 정치가 이를 개선할 인력, 예산, 법적 근거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길 바란다.

이제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 노동, 신체, 삶에 대한 주권과 자유를 박탈당한 곳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공허하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부르주아 사회가 직접 생산한 폭민(暴民)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한다고 썼다. 이 위험한 불평등의 시대에, 민주주의는 일하는 사람들의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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