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있지 않은 뒷문 열고 택배 배송하면 건조물 침입?
[경향신문]
잠겨있지 않은 미용실 뒷문으로 들어가 배송 작업을 한 택배기사의 행위는 범죄일까 아닐까.
올해 5월 결혼을 앞둔 택배기사 하모씨(27)는 일자리를 다시 찾고 있다. 지난해 배송을 하다 건조물 침입죄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 심리로 2일 열린 재판에서 검사가 읽은 하씨에 대한 기소 요지는 한 문장이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문한 상품을 배송한 택배기사로 2020년 8월 피해자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시정(施錠·자물쇠로 문을 잠금)되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 침입했습니다.”
하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미용실에 배송을 갔다. 작은 신축 건물 1층에 미용실이 있었다. 미용실 문 앞에 택배상자를 두려면 1층 현관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현관 출입문은 도어록으로 잠겨있었고 고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부 주차장 쪽으로 난 미용실 뒷문이 보였다. 뒷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네다섯 걸음을 걸어 미용실 안에 물건을 두고 나왔다. 다른 배송지로 이동하던 중 미용실 주인의 전화가 왔다. 주인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미용실 정문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하씨는 미용실로 돌아가 뒷문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가지고 나온 후 다시 현관 출입문 들어가 미용실 앞문 앞에 물건을 뒀다. 몇 시간 뒤 하씨는 건조물 침입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출근한 주인이 하씨를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하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새로 연 가게에 발자국이 찍혀서 매우 기분이 나빴다”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요구했지만 주인은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았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후 피해자는 합의금 300만원을 요구했다. 하씨는 당시 합의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지난해 10월 벌금 20만원의 약식명령 판결이 나왔다. 당초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던 검사는 “벌금이 너무 적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날 하씨가 피고인석에 서게 된 이유이다.
택배기사들은 당일 배송 압박과 물건 분실 우려 때문에 “잠긴 문을 열어서라도 물건을 두고 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강민욱 택배연대노조 조직부장은 “많은 택배기사들이 당일 배송을 마치지 못하면 대리점의 압박을 받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배송할 수가 없다”며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불만이 접수되면 본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씨는 변호사 없이 홀로 선 피고인석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검사는 벌금 50만원을 구형했다. 하씨는 “피해자에게 죄송하다. 이 사건 전에 택배 물건을 여러 번 분실해 물어준 적이 있어 최대한 안전하게 해야겠다는 강박이 있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판결 선고는 오는 9일에 예정돼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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