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이수민 독일 통신원 2021. 2.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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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뒤엎고 기민당 대표로 선출됐으나 지지율 저조 
기존의 '당 대표→총리' 전례 깨질 수도

(시사저널=이수민 독일 통신원)

시작은 지난해 2월10일이었다. 이날, 당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이하 기민련) 당 대표였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급작스러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이 2018년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선출된 그는 '차기 메르켈'로 불리며 향후 탄탄한 정치적 커리어가 보장된 듯 보였다. 따라서 사퇴 소식은 더욱 놀라움을 안겼다. 기민련은 새로운 수장을 뽑을 날짜로 그해 4월25일을 정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예정일이 무기한 연장됐고, 12월 전당대회가 논의된 적이 있지만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또 한 번 무산됐다. 전당대회는 결국 해를 넘긴 올해 1월15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후보는 총 3명. 정치적으로 다시 부상할 기회를 노리던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인 아르민 라셰트, 그리고 기민련의 경제 전문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세 명 모두 법학을 전공한 남성이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두고 다시 본(독일 분단 시절 서독의 수도) 공화국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도 나왔다.

1월15일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신임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왼쪽)는 포스트 앙겔라 메르켈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여론은 회의적인 분위기가 앞서고 있다.ⓒAP 연합

라셰트, 총리 후보 적합도 21%에 불과

1965생인 뢰트겐은 1982년 기민련의 청년조직에 가입해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청년조직 대표를 맡았다. 1994년에는 독일 연방의회에 입성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에는 라셰트를 이기고 기민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대표로 선출됐다. 이때 그는 이미 연방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지 1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뢰트겐은 그러나 2012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련이 지극히 저조한 성적을 내자 이에 책임을 져야 했고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2014년부터 그는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메르츠는 1955년생으로 1972년부터 기민련의 청년조직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유럽연합 의회에서 활동했다. 2005년에는 마이어 브라운 로펌의 파트너가 됐고, 변호사 활동 외에도 각종 대기업의 감사회·자문위원회·행정참사회에서 활동했다. 그의 경력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16~20년 블랙록(글로벌 자산운용사)의 감사위원장 및 로비스트 활동이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거리를 둔 적은 없었다. 2018년에도 크람프-카렌바우어와 당 대표 경합을 벌였고, 지난해 초 기민련의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다. 당시 그는 독일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1년 만에 그의 이미지는 많이 추락했다. 가령 지난해 12월 전당대회 진행 여부가 논의되었을 때 그는 행사를 추진하자는 입장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했고, 점차 심해지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전당대회가 미뤄지자 "내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모함"이라는 주장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메르츠는 현재 독일 정치인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코로나19 위험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환경분야에서도 친환경 노선을 걷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는 신자유주의자이자 민영화 추진을 주장한다. 재산세 증세에 강력히 반대하며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고 그만큼 산업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대변했다.

그럼에도 기민련 전당대회 전 각종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메르츠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달랐다. 라셰트의 승리였다. 1차 투표에서는 메르츠에게 5표 뒤졌지만, 2차 투표에서 이를 뒤집으면서 당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독일 매체들은 메르츠가 추진력이나 지도력 면에서는 더 강하지만, 블랙록 로비스트로 활동한 전력과 반(反)코로나19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야기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사회적 통합의 이미지가 강한 라셰트에게 당원들의 표심이 기울었다는 평가다.

라셰트는 독일 내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수장으로, 1961년 아헨에서 태어났다. 만 18세에 기민련에 입당했고, 10년 후인 1989년에는 아헨 시의회에 최연소로 입성했다. 2005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돼 5년간 장관을 지냈다. 이후 주의회에 입성하고 2012년에는 기민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17년 주총리가 돼 현재까지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성향으로는 중도 진보로 알려져 있으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가치관을 대변한다. 주 가족부 장관을 지낼 당시 그는 통합적인 이민 정책을 대변했다. 이때 특히 교육 면에서의 공평함을 강조하며 사회 통합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라셰트는 중립성에 치중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후보 중 가장 좋은 연설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당 대표가 총리 후보로 이어지는 전례가 있다. 메르켈도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당 대표를 맡았으며, 그 전에 총리였던 사민당의 슈뢰더 역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총리직을, 그리고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당 대표를 지냈다. 그렇다면 라셰트는 기존 당 대표들이 그랬듯, 기민련의 총리 후보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대다수의 전문가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당 대표가 꼭 총리 후보가 된다는 법칙은 없기 때문에 예외도 가능하고, 이번이 그러한 경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실제로 그가 총리 후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1%에 불과하다.

연정 파트너인 죄더 대표, 총리 후보로 부상

그렇다면 현재 가장 강력한 기민련 총리 후보는 누구일까. 기민련 내에는 없다는 게 다수의 판단이다. 놀랍게도 기민련과 연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사회연합(CSU·이하 기사련)의 당 대표이자 현재 바이에른 주총리인 마르쿠스 죄더가 가장 유력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기사련은 본래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민련과 연정을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연방을 책임지는 총리직에 후보를 내세운 사례가 극히 적다. 지역적으로 협소하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죄더는 바이에른 내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강한 리더십을 증명했고 기자회견마다 강력한 방역 조치의 필요성을 과학을 통해서가 아닌 연대의식과 감정으로 역설해 대중에게 공감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다.

인기는 설문조사에도 반영돼 43%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이례적으로 기사련의 죄더가 연방 총리직에 도전할 기회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전례대로 라셰트가 총리 후보가 될 것인지 주목된다. 물론 당 대표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뢰트겐과 메르츠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민련-기사련 연정은 부활절 즈음에 총리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불과 8개월 남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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