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최고가는 내일의 최저가" 뉴질랜드의 집값 영구 상승론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1. 2. 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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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봉 기자의 '팬데믹 주택 버블' 연구 - ① 뉴질랜드의 미친 집값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오클랜드.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을 넘어서는 등 집값이 폭등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주택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핵심 목표이다”, “집값이 더 이상 오르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 “공공주택을 대폭 확대하겠다.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국토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을 것 같은 발언이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이다. 아던 총리는 작년 3월 선제적 입국 금지 등 국경 봉쇄로 코로나 확산 차단에 성공하는 등 강력한 정치적 리더쉽을 자랑했다. 국내 고용의 8%를 차지하는 관광업계에 직격탄을 줄 수 있다는 반대에도 조기에 국경봉쇄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성공적인 방역을 했고 덕분에 작년 10월 총선에서 압승,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집값문제와 관련해서는 무능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중도 좌파 노동당을 이끄는 아던은 2017년 총선에서 집값 안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최연소 총리가 됐다. 그는 2018년 집값을 잡겠다며 외국인들이 기존 주택을 사들이는 것을 금지하는 과격한 조치를 도입했지만, 소득 대비 집값 상승률 1위, 집값 과다평가 세계 2위 등의 통계가 쏟아질 정도로 집값이 급등했다.

◇코로나로 이민 중단된 상태에서 집값 폭등

작년 10월 총선에서 압승해 재선에 성공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외국인들의 기존 주택구입을 제한하는 등 집값을 잡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았으나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리더쉽이 흔들리고 있다.

외국인들의 주택거래가 뉴질랜드 주택 거래의 3%에 불과했지만, 아던 총리는 “외국인 투기로 집값이 오르는 걸 막아야 한다. 이번 조치로 뉴질랜드 국민이 집을 사기 더 쉬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당시 집값 급락론도 나왔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지난해 뉴질랜드는 기스본(30.4%) 매스터턴(29.6%) 등이 30% 안팎의 폭등세를 기록하면서 전국 평균이 10% 이상 급등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로 극심한 경기침체와 집값 하락이 예상되던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클랜드의 주택가격(중위가격) 사상 처음으로 100만 뉴질랜드 달러(약 8억원)를 돌파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 조치 등으로 이민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집값이 폭등했다는 것은 중국인 부유층 등 이민자들이 집값 급등의 주범이라는 뉴질랜드 시민 사회의 불만이 결국 희생양 찾기였다는 것이 입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73.8%(1991년)였던 자가점유율이 63%까지 떨어졌고 주택가격도 최근 10년간 거의 2배 상승했다. 임대료도 치솟아 선진국 중에서 홈리스비율이 가장 높고 이동주택이나 텐트에서 숙박하는 젊은이들까지 등장했다. 집이 없어 공공주택에 입주신청한 대기자가 2만2000가구로, 최근 5년간 5배 늘어났다. 매년 공공주택 신청자가 5000명씩 늘어나지만, 정부 공급물량은 1600가구에 불과하다. 서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당 정부가 집권했는데 서민 주택 문제가 더 악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역사상 최악의 주택 위기’라는 문구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강력한 환경규제로 인한 만성적 주택부족이 집값 폭등 불러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2.6배 정도 넓은 국토면적이지만, 인구 500만명에 불과하다. 집 지을 땅이 널려 있을 것 같은 뉴질랜드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저금리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조기에 국경을 봉쇄해 코로나 확산 차단에 성공, 경기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점도 주택시장 과열에 한 몫 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주택공급 부족이 근본적 배경이다. 뉴질랜드의 주택 인허가는 인구 300만명대였던 1970년대에 연간 4만 가구였지만, 인구가 500만명 안팎으로 늘어났는데도 2만~3만 가구 수준이다. 리먼쇼크의 영향을 받았던 2009~2011년에는 1만4000 가구 수준으로 주택 인허가가 줄었고 2017년에야 3만 가구 수준을 회복했다. 1000명당 주택인허가가 1973년 13.2 가구에서 2011년 3.1 가구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집값 급등으로 인허가가 늘어났지만, 7.1 가구에 불과하다. 이민에 의해 인구가 꾸준하게 늘어나는 만큼 적절한 주택이 공급돼야 했지만, 규제가 걸림돌이 됐다. 집값이 폭등한 지난해 연간 인허가 물량이 3만7000가구로 늘어났지만, 상당기간 주택부족이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주택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1991년 도입한 자원환경관리법(Resource Management Act)도 원인이다. 자원관리법은 신규 토지에 건축할 경우, 환경파괴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지역주민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부과하고 최종 이용 승인을 해당 지방정부로부터 받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뉴질랜드 정부조차 보고서를 통해 “자원관리법의 승인 관련 불확실성과 인허가 기간 지연 등으로 10년간 업체들이 4만 가구의 주택 건설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노동당 정부도 자원환경관리법 개정을 통한 공급량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주택, 지분형 주택 등 서민 주거난 완화 대책 쏟아내

아던 총리는 주택 위기가 정치적 쟁점이 되자 지분형 주택 도입, 공공주택 공급 확대 등 각종 주택 대책을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집값의 90%에서 80%, 다시 70%로 제한하는 조치들이 순차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야당은 “노동당 정부가 1만6000가구의 공공주택 공급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 공급된 것은 602가구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외국인 규제가 효과가 없자 뉴질랜드 정부는 저금리, 투기적 가수요, 코로나 선제적 대응에 따른 경기 회복 등 핑계를 되고 있지만, 결국 공급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학자 마이클 레델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집값 상승은 토지를 (환경규제로) 인위적으로 희귀자원으로 만든 예상 가능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지나치게 저금리를 유도한 것이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현재 뉴질랜드의 금리는 과거 경기침체기보다 낮지 않고 대출 규제 강화는 단기적 효과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오늘의 최고가가 내일의 최저가” 부동산 영구 상승론 확산

부동산이 가장 안전한 자산이며 확실한 재테크 수단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도 집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1983년 오클랜드의 교외에 있는 3만6500 뉴질랜드 달러였던 주택이 최근 58배 오른 210만 뉴질랜드 달러에 팔렸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런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오늘의 최고가가 내일의 최저가”라는 주장도 나온다. 뉴질랜드도 리먼 쇼크로 인해 2008년 4.8%, 2010년 2.2% 정도 하락했지만, 곧바로 회복해 10년간 2배 정도 올랐다.

”뉴질랜드의 주택 붐이 끝나간다”(2017년 11월 블룸버그).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소득대비 주택가격이 가장 높은 나라다. 가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19년 7월12일 블룸버그)

집값이 치솟으면서 버블 붕괴를 경고하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뉴질랜드 주택의 지난해 시가총액은 1년 사이에 11% 오른 1조 2800억 달러로, GDP(3210억 달러)의 4배가 됐다. 2019년에는 GDP의 3.7배였다. 한국은 2019년 기준으로 주택 시가 총액(5056조7924억)은 GDP의 2.64배였다. 뉴질랜드의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990년 27.90%에서 작년 96.90%로 급증했다. 한국은 지난 해 101.1%를 기록했다. 국제 부동산 컨설팅회사 프랑크 나이트 조사(2020년 3분기 기준)에서 뉴질랜드의 연간 집값 상승률이 15.4%였다. 조사 대상 56개국중 터키(27.3%)보다 낮았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집값 상승 국가였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주택하락론이 크지 않다. 심지어 뉴질랜드 재무부는 작년 말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1년에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실업률 저하 등으로 2021년에는 주택 가격은 8.5%, 2022~2025년까지 매년 4~5% 상승할 전망”이라고 밝혔을 정도이다. 코로나를 퇴치하면 그동안 중단됐던 외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이 다시 돌아오고 이민에 의한 인구증가로 집값이 강한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분석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급격한 금리 인상, 이민감소 등과 같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집값이 계속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을 통한 인구조절로 집값 폭락 없다는 믿음

사실상 뉴질랜드 집값은 영구적으로 오른다는 논리가 퍼지고 있다. 고령화로 인구가 정체된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이민을 통해 인구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 낙관론의 가장 큰 근거이다. 주택시장이 하락 및 정체기인 2010~2012년은 순이민(전입이민에서 전출 이민자를 뺀 숫자)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시기였다. 집값이 오른 2015년~2016년은 순이민이 연간 4만~6만명에 이르렀고 급등기인 2019년에는 7만4000명까지 급증했다. 이민의 증감이 집값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일부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부동산 거래 양도세를 강화하고 파격적인 주택공급확대 정책을 펴지 않는 것은 결국 주택을 소유한 중산층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정 상대인 녹색당에서는 세제 강화를 거론하고 있지만, 아던 총리는 도입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투기적 목적이 아닌 실거래 목적의 부동산 거래까지 중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뉴질랜드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주택을 ‘저축 수단’으로 인식한다. 결혼후 집을 사고 자녀가 자라면 집을 넓히고 은퇴후에 집을 팔아 노후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낙관론만으로 집값 계속 오를 수는 없어

부동산 버블은 모두가 낙관할 때 한없이 커진다. 일본도 버블 붕괴 직전까지 일본은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서 집값 하락은 절대 없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에 부동산불패론은 산산이 조각났다. 뉴질랜드 집값도 무한정 오를 수만은 없다. 파격적 주택공급 확대 정책, 대출 제한, 금리 반등 등에 따라 언제든지 하락세로 전환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 해리 덴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이어서 인구적으로 (자산가격 상승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선진국 중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결코 부동산 거품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게 올라 평균적 구매자들이 살 수 없게 되면 결국 가격이 내린다”면서 “주택 구매자의 대출 비중이 높을수록 하락기에 은행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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